“퇴직금까지 받았는데, 다시 부르더군요.”
2년 전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한 시중은행 직원은 최근 다시 그 명찰을 달았다. 오랜 경험을 갖춘 인력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시니어 재고용 바람’이 은행권 전반에 불고 있다.
국내 주요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2021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5년간 퇴직자를 재고용한 사례가 5,000건을 넘어섰다. 연평균 1,000명꼴이다. 특히 올해는 10월 기준 재채용 인원이 946명으로 이미 전년(876명)을 넘어섰다.
▲ 현장 경험이 필요한 곳에 ‘맞춤형 재투입’
은행들이 퇴직 인력을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년을 일괄적으로 늘리는 대신, 현장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숙련된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인사적체를 줄이면서도 청년과 시니어가 함께 일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이라는 평가다.
신한은행은 최근 몇 년간 퇴직연금솔루션부와 소호(SOHO) 성공지원센터 등에서 퇴직 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1년 이후 재채용된 시니어 인력만 1,500명을 넘었다. 은퇴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 고객의 퇴직연금, 세금 절감, 자산관리 상담을 맡으면서 고객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우리은행은 기업금융(IB) 부문과 본부 지원 업무에서 퇴직 인력을 재고용했다. 지역 기반 중소기업을 직접 찾아 금융 컨설팅을 제공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준법감시, 자금세탁방지(AML), 집단대출 관리, 금융사기 대응, 비대면 대출 심사 등 경험 의존도가 높은 업무에 시니어를 투입하고 있다.
▲“정년 연장보다 수요 기반 재배치가 현실적”
은행권 관계자들은 “한 은행에서 수십 년 근무한 베테랑의 노하우를 단순히 퇴직과 함께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며 “현장에서 필요할 때마다 불러 쓰는 구조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퇴직 후 다시 돌아온 직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한 시니어 직원은 “퇴직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는 등 준비를 했다”며 “다시 금융 현장에 서보니 그동안의 경험이 여전히 통한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퇴직=끝’ 아닌 ‘다른 형태의 시작’
은행권은 예전처럼 ‘퇴직=끝’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경력 전환’으로 인식을 바꾸고 있다.
일부 은행은 퇴직자 전용 라운지나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재취업·창업 컨설팅도 제공한다.
이러한 변화는 고령화 사회에서 경험 자원의 선순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금융권은 보안·심사·상담 등 업무 특성상 디지털보다 신뢰와 경험이 우선되는 영역이 많아, 시니어 인력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문성 재활용이 곧 경쟁력
전문가들은 시니어 재고용이 단순한 인력 보충이 아니라, 지식 자산의 재활용이자 조직의 경쟁력 강화라고 본다.
퇴직 인력의 경험을 조직 학습으로 연결하고, 청년 인력과 멘토–멘티 체계를 구축한다면 노령화 시대 인사 전략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