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그냥 옛날 영화 다시 봐요.” “설거지할 때 예능 틀어놓고 듣기만 해요.” 직장인 김모 씨(35)의 말은 최근 콘텐츠 소비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OTT 플랫폼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신작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과거의 익숙한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고, 예능 프로그램을 백색소음처럼 틀어놓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리와인드 소비(Rewind Consumption)’와 ‘일상 동반 콘텐츠’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분석한다.

사진=무한도전, MBC제공

[콘텐츠 피로감, 익숙한 것에서 찾는 안정감] 수많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무엇을 볼지’ 고민하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를 ‘콘텐츠 피로감(Content Fatigue)’이라 한다. 새로운 줄거리와 자극적인 서사보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직장인 박모 씨(40)는 “처음 보는 영화는 집중해서 봐야 하니 피곤해요. 퇴근 후에는 그냥 예전에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두고 쉬는 게 더 좋더라고요”라고 말한다.

[집안일의 동반자, 백색소음형 예능]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일상 속에서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유튜브 콘텐츠를 ‘배경음’처럼 활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설거지나 청소, 식사 준비 등 집안일을 할 때 방송을 틀어두고 소리만 들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 씨(32)는 “혼자 살다 보니 집이 너무 조용해서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TV에서 예능이 흘러나오면 사람 소리가 들리니 안정감이 생겨요”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상 동반 콘텐츠’ 소비 경향으로 분석한다. 혼자 있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심리가 콘텐츠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경기불황과 회고적 소비 심리] 고물가, 고금리 등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추구하게 된다. 과거 자신이 즐겼던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는 ‘추억소비’가 활발해지는 배경이다.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힘들 때는 결국 옛날 시트콤이 최고”, “옛날 영화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레트로 열풍과 맞물려 과거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이유다.

[취향 파편화와 개인화된 시청 패턴] 콘텐츠 소비가 점차 개인화되면서, 각자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시청 패턴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는 최신작을 몰아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만의 루틴 속에서 과거 영화를 반복해 보거나 백색소음용 프로그램을 틀어둔다. 미디어 전문가 이지훈 교수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일상과 감정 상태에 맞는 맞춤형 시청 패턴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리와인드 소비와 백색소음형 콘텐츠는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과거 작품이나 소소한 예능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현상. 이는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피로한 현대인들이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찾으려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 리와인드 소비와 백색소음형 콘텐츠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일상 속 깊숙이 자리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용어설명 : 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등 OTT 플랫폼이 쏟아내는 신작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선택이 어려운 상태, 이른바 ‘콘텐츠 피로감’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보는 과정 자체를 피곤해하며, 안전하고 익숙한 과거 콘텐츠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걸 '리와인드 소비(Rewind Consumption)' 라고도 표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