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돌잔치 답례품이나 집들이 선물로 받던 ‘평범한 수건’이 이제는 프리미엄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한 장에 2만 원을 훌쩍 넘는 고급 수건을 스스로 구매하며,
“이건 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필코노미(Feelconomy·감정경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고물가 시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감정 중심 소비’가 늘고 있다.
호텔급 수건, 촉감 좋은 잠옷, 디자인이 세련된 양말 등
작은 만족감을 주는 생활용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주요 프리미엄 수건 브랜드의 건당 결제금액은
2023년 5만 원대에서 올해 7만 원을 넘어 2년 새 34% 가까이 상승했다.
특히 20~30대 소비자들이 중심이 되어 ‘테토’, ‘웜그레이테일’ 같은 브랜드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 “기분이 좋으면 하루가 달라진다”… 감정 관리형 소비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감정 관리 소비’로 해석한다.
과거에는 스트레스를 참거나 회피했다면,
이제는 ‘작은 소비로 기분을 회복하는 자기 위로 방식’이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26』에서
“필코노미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감정을 회복하기 위한 생존형 소비”라고 분석했다.
즉, 감정의 기복을 통제하기보다 ‘스스로 다스리는 시대’로 변화했다는 의미다.
☕ 불편한 감정 대신 해결해주는 ‘감정 절약 서비스’도 인기
감정을 관리하려는 욕구는 서비스 형태로도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퇴사 대행 서비스’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평균 3만 엔(약 30만 원)을 내면 대행업체가 대신 상사에게 연락하고
사직 절차를 모두 처리해 준다.
“마음이 불편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심리가 시장을 키운 셈이다.
미국에서는 ‘AI 전화 대행 서비스’가 등장했다.
통신사 요금제 변경, 구독 해지, 항공사 보상 요청 등
귀찮고 스트레스 받는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다.
‘AI가 나 대신 감정을 절약해준다’는 개념이 실생활로 들어온 것이다.
🪞“좋은 기분만 추구하는 사회는 위험하다”는 경고도
하지만 모든 필코노미 소비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부정적 감정을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오히려 정서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 교수는 “좋은 기분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사회는
슬픔·불안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왜곡시켜
결국 스스로의 균형 감각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기분 좋은 소비가 일상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좋지만,
감정을 ‘상품화’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 생활 속 실천 팁
‘필코노미’는 비싼 소비보다 ‘작은 만족감의 누적’이 핵심이다.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나만의 ‘기분 전환 루틴’을 만들어보자.
수건, 향, 조명 등 감각적 아이템 하나로도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단, 감정을 돈으로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산책·독서·대화 등 비소비적 회복 루틴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작은 물건 하나, 향 좋은 수건 한 장이 하루의 기분을 바꾸는 시대다.
소비의 중심이 ‘소유’에서 ‘감정’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지금 ‘기분 관리형 소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문제는 얼마나 더 비싼 것을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으로 나의 하루를 회복하느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