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0월 30일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6년 4개월 만에 다시 만난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꿀 이번 회담은 ‘세기의 담판’이라 불릴 만큼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실제 결과는 전면적 합의보다는 부분적 봉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양국 간 관세 완화 ▲희토류 등 전략자원의 수출 통제 ▲AI 반도체 규제 완화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무역적자 축소와 펜타닐 차단을 내세우며 강경한 통상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보복 관세와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과 달리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수출 다변화 전략을 추진하며 경제적 체력을 강화했고, 미·중 간 무역 의존도도 눈에 띄게 줄었다. 2018년 19%에 달했던 중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현재 1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중국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 전략 광물에 대한 통제 강도를 다시 높였다. 국영기업인 중국희토그룹은 4분기 희토류 수출 규제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협상 과정에서 희토류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희토류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내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장기적인 무역 전쟁을 버티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4.8%로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와 투자 부진이 심화되고 청년 실업률은 20%에 육박한다. 저가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태양광 산업에서는 기업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강화도 중국 산업 구조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시진핑 주석에게 이러한 경제 상황은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최근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는 후계자 언급이 전혀 없었고, 시 주석의 장기 집권 체제 강화만 재확인됐다. 내부적으로 불만이 쌓이고 경제 둔화가 지속되면, 시 주석이 4연임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완충 지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대선 이후 글로벌 공급망 안정과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중국과의 최소한의 협력이 필요하다. 중국 또한 경제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대외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양국이 AI 칩과 희토류 수출 규제를 서로 완화하는 ‘교환 협상’이 현실적인 타협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진행 중인 고위급 무역 회담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주 회담이 갈등의 종결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긴장 상태’를 설정하는 자리로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긍정적 메시지를 내놓더라도, 실제 세부 합의는 이후 장관급 회담에서 조율될 가능성이 높다.
쉬웨이쥔 화난이공대 연구원은 “양국은 무역 불균형과 공급망 안보, 대만 문제 등에서 여전히 이견이 크다”며 “이번 회담이 구체적 합의로 이어지긴 어렵지만, 협상 재개라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현실적인 목표는 ‘타협’이 아니라 ‘갈등의 관리’다. 희토류와 반도체, 관세 문제에서 작은 틈이 열리면 세계 공급망의 숨통이 트이겠지만, 근본적 신뢰 회복까지는 여전히 먼 길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