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 유통업체들이 인공지능(AI) 시대의 인력 효율화를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타깃(Target)은 본사 인력의 8%에 해당하는 1800명을 해고하기로 결정했으며, 월마트(Walmart)와 크로거(Kroger)도 잇따라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도입이 전통적인 유통 산업의 고용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타깃은 최근 11분기 연속 매출 부진을 겪으며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고객 감소와 재고 관리의 어려움, 셀프 키오스크 확대에 따른 불만 등이 겹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새로 선임된 마이클 피델케 최고경영자(CEO)는 “회사가 그동안 만들어온 복잡성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번 감원이 불가피한 ‘긴급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직원들은 오는 28일 공식 통보를 받을 예정이다.
미국 내 다른 유통 대기업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크로거는 지난 8월 비용 절감과 경영 단순화를 이유로 본사 직원 약 1000명을 해고했다. 여기에 더해 실적이 저조한 매장 최대 60곳을 폐점할 방침이다. 월마트 역시 지난 5월 조직 효율화를 명분으로 약 1500명의 직원을 줄였다. 감원 대상은 글로벌 기술 부서와 미국 내 이커머스 물류, 광고 사업 부문 ‘월마트 커넥트(Walmart Connect)’가 중심이다.
이 같은 대규모 감원은 단순한 실적 부진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내 소비 위축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AI와 자동화 기술이 본격적으로 산업에 도입되면서 인력의 역할 자체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미시간대학이 발표한 9월 소비자심리지수는 55.1로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미·중 무역 갈등과 관세 압박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지출 심리가 위축된 것도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부추기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물류·재고 관리뿐 아니라 가격 책정, 광고, 매장 운영까지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아마존은 오는 2027년까지 전체 운영의 75%를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약 16만 명에 해당하는 인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AI 전환기의 전조’로 보고 있다. 과거 제조업에서 자동화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했다면, 이제는 백오피스 중심의 서비스 산업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 관리와 지원 역할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는 대신, 데이터 분석과 AI 모델 운영, 고객 경험 설계 등 새로운 직무가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측면에서는 불편함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키오스크나 셀프 결제 시스템 확산으로 대면 서비스가 줄어들고, 일부 매장은 유료 상담이나 멤버십 전용 서비스를 도입하며 새로운 비용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단기적인 감원 효과는 기업의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역 일자리 축소와 사회적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AI가 촉발한 유통업계의 구조조정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거대한 전환의 시작점에서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이유로 사람을 줄이고 있지만, 동시에 기술 혁신에 적응하지 못한 조직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유통 산업의 패러다임을 다시 짜고 있는 지금, 앞으로 남는 질문은 ‘누가 가장 빠르게 이 변화에 적응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