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직접구매 급증, 농협 주도 연간 1,000t 수출 전망
일본 내 쌀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동안 막혀 있던 한국 쌀의 수출길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단 한 톨도 일본으로 수출되지 않았던 한국 쌀이 올해 들어 550t 이상 수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일본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직접 구매해 반입하는 물량까지 더하면, 실제 일본 시장에 유입된 한국산 쌀은 1,000t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 일본 쌀값, 폭염 이후 급등세 지속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출통계에 따르면 2025년 1~9월 기준 한국산 멥쌀의 대일본 수출량은 550.7t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수출 실적이 ‘0t’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새 시장이 열린 셈이다.
일본 내 쌀값 상승은 기후 변화에서 비롯됐다. 일본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3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생산량이 급감했고, 여기에 관광객과 외식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면서 내수 소비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2024년에도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졌고, 시장 평균가는 5kg당 4,142엔(약 3만9천 원)으로 전년 대비 약 23% 상승했다.
■ 한국 쌀, 가격 경쟁력 ‘뚜렷’
한국 쌀의 소매가격은 일본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aT 자료 기준 20kg당 국내 평균 소매가는 약 6만5천 원으로, 일본(약 15만6천 원)과 비교해 42% 수준이다. 이 같은 가격 차이는 관세와 물류비를 감안하더라도 일본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한국 쌀 쇼핑’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일본으로 반입된 한국산 백미의 검역 실적은 약 6만1천kg으로, 전년 연간 실적(1.3t)의 45배를 웃돌았다.
■ 농협, 연말까지 900t 수출 계획
현재 대일본 수출은 농협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올해 1월부터 10월 중순까지 531t을 수출했으며, 연말까지 추가로 369t을 선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25년 전체 대일 수출량은 900t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농협 관계자는 “일본 내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고, 관광객 구매 물량까지 포함하면 1,000t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며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일본 소비자에게 한국 쌀의 품질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관세 장벽 여전히 높아…“브랜딩 중심 전략 필요”
다만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일본은 외국산 쌀에 대해 kg당 341엔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운송비와 유통마진을 합치면 수익성이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수출은 실질 이익보다는 시장 개척 성격이 강하다”며 “장기적으로 브랜드 인지도 제고와 프리미엄 포지셔닝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한국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일본 내 쌀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라며 “한국 방문 일본인을 대상으로 시식 행사와 체험형 마케팅을 확대해 한국산 쌀의 인지도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 “지금은 시장 개척기…K-라이스의 시험대”
전문가들은 이번 수출 급증을 단기적 호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일본 시장에 한국산 쌀을 자리 잡게 할 전략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임준혁 연구원은 “일본 내 소비 패턴이 다양화되고 있고, 일부 소비자층은 품질과 맛을 우선시한다”며 “지속적인 홍보와 품질 차별화로 ‘한국 쌀 =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요약
2025년 1~9월 대일 쌀 수출 550.7t 기록, 전년 0t → 폭증
관광객 반입 포함 시 실제 유입량 1,000t 전망
일본 쌀값 급등, 한국 쌀은 절반가로 경쟁력 확보
관세(kg당 341엔) 부담 여전, ‘브랜딩 중심’ 접근 필요
정부, 일본인 관광객 대상 시식 홍보 강화 계획
기자 해설:
이번 사례는 단순한 ‘수출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후위기와 관광 회복이 맞물리며 만들어진 예상치 못한 틈새 시장에, 한국산 농식품이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쌀 산업의 경쟁력은 가격이 아니라 ‘스토리와 품질’에 달려 있다. ‘싸서 사는 쌀’이 아닌 ‘다시 찾는 쌀’을 만들어야 K-라이스의 성공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