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미 고위급 협상단이 22일 새벽 긴급히 워싱턴으로 향했다. 오는 29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나라가 사실상 관세협상 최종 담판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불과 사흘 만에 다시 미국을 찾으면서 협상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다.
■ “한두 가지 쟁점 남았다”…사실상 최종 조율
대통령실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이번 방미는 APEC 정상회의 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대부분의 쟁점에서 진전이 있었다”며 “남은 한두 가지 사안을 집중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핵심 쟁점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시기 및 품목 조율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95조 원) 규모 대미 투자펀드의 조성·운용 구조 ▲외환시장 안전장치 및 이익 배분 방식 등이다.
이번 협상 결과는 단순한 관세 조정이 아니라 양국의 경제 협력 구조를 재정의하는 ‘경제 패키지 딜’로 평가된다.
■ APEC 회담 앞두고 ‘정상 합의문’ 문안 조율
한·미 양국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여하는 29일 한·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구체적 문안을 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합의문은 기존의 양해각서(MOU)가 아닌 팩트시트(Fact Sheet) 형태로 작성될 전망이다. 이 문서는 관세 인하와 투자 규모, 실행 일정 등 양국의 약속을 공식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앞서 7월 양국은 큰 틀의 무역합의에 도달했으나, 이후 세부 문구 조정과 법적 문서화 과정에서 이견이 이어졌다. 이번 방미는 그간의 협상에서 남은 ‘핵심 문구’ 조율을 위한 마지막 라운드로 해석된다.
■ 관세 인하+투자펀드…양국의 ‘빅딜’ 구조
이번 협상은 ‘관세 인하 대(對) 대규모 투자’의 구조로 짜였다.
미국은 자국 내 제조·고용 확대를 위한 한국 기업의 투자를 요구했고, 한국은 관세 완화와 금융 협력 강화를 맞교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 측이 제안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는 반도체·배터리·AI·청정에너지 분야 중심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특히 금융 안전장치 마련이 이번 협상의 핵심 중 하나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 간 통화 스와프 수준의 유동성 백업 장치가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 산업별 기대 효과
관세 인하가 실현될 경우, 자동차·배터리·철강·화학 등 주요 수출품의 미국 시장 가격 경쟁력이 즉시 강화될 전망이다.
반면 합의가 지연되면 수출기업의 부담이 지속되고, 불확실성이 확대돼 원·달러 환율과 주식시장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단순히 관세 인하를 넘어 한국 기업의 미국 내 공급망 확장과 장기 투자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조로 가는 전환점”이라며 “합의 여부가 향후 수년간 양국 산업 관계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