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확산이 한국과 미국 노동시장에 예상보다 빠르고 거친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사무·관리직을 중심으로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해고 대신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청년층 일자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AI 시대의 첫 번째 희생은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 미국은 해고 폭탄, 한국은 채용 절벽
최근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미국 실업자 중 4년제 학위 보유자의 비중이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마존, 타깃, 스타벅스 등 대형 기업들이 AI 투입을 이유로 조직을 재편하면서 화이트칼라 인력이 대거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결과다. 20대 초반 실업률도 빠르게 상승하며 젊은 층 타격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충격의 방향만 다를 뿐 상황은 심각하다. 기업들이 인력 감축 대신 채용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사회 진입을 앞둔 청년층이 가장 먼저 압박을 받고 있다. 정규직 공채 축소, 인턴 선발 제한, 전환율 하락 등이 겹치면서 ‘채용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3년 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21만 개…그중 98%가 AI 영향
한국은행의 최근 분석은 이 같은 흐름을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해준다. 지난 3년 동안 감소한 청년층 일자리는 약 21만 개인데, 이 중 20만 개 이상이 AI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에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신입이 대체되는 구조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이상 일자리는 오히려 증가했다. 경력과 지식이 필요한 업무는 AI가 쉽게 대체하지 못해 시니어 직무가 상대적으로 강화되는 ‘연공 편향적’ 기술 변화가 현실화된 셈이다.
■ 전체 실업자는 줄어도 ‘대졸 실업’은 계속 증가
인구 감소로 전체 실업자 규모는 줄어드는 흐름이지만, 실업자 중 대졸 이상 비중은 오히려 계속 올라가고 있다. 10여 년 전 30%대였던 비중은 최근 절반에 근접했다. 취업 시장의 문이 좁아지고, 청년층이 반복된 구직 실패 끝에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흐름이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이 40만 명을 넘어서며 공식 실업 통계를 넘어서는 실질적 위기도 커지고 있다. 구직 활동을 중단한 청년들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정년 연장 논의, 청년 채용 위축과 충돌할 가능성
정부는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기업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신규 채용 여력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정년 연장을 추진하더라도 임금 체계 개편, 연금 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청년층 일자리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 “AI 때문이 아니라, AI에 대응하는 방식이 문제”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을 ‘AI 기술’ 자체보다 ‘AI 도입 방식’에서 찾는다. 자동화로 줄어드는 업무보다 더 큰 문제는, AI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직무가 청년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AI 활용 역량을 키우는 재교육 체계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청년 고용 위기를 AI 탓으로만 돌리기보다는,
· AI 시대의 새로운 직무 설계,
· 재교육과 리스킬링 체계 구축,
· 채용 구조 개선
등 정책적 해법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의 흐름이 계속될 경우 청년층의 사회 진입이 구조적으로 막히면서,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도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