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 시장에서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등장했다.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고신용자에게 적용되는 대출금리가 오히려 저신용자보다 높게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고신용자 → 낮은 금리’라는 구조가 금융시장의 기본 원칙으로 작동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역전은 단순한 통계적 착오가 아니라 금융정책의 방향 전환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평가된다.
■ 일부 은행에서 실제 금리 역전 발생
은행연합회가 공개한 9월 신용점수별 평균 금리 자료를 보면, 몇몇 시중은행에서 ‘601~650점 구간’의 차주가 ‘600점 이하 차주’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적용받았다.
NH농협은행: 601~650점 금리(6.19%) > 600점 이하(5.98%)
신한은행: 601~650점(7.72%) > 600점 이하(7.49%)
IBK기업은행: 601~650점(5.13%) > 600점 이하(4.73%)
이례적인 이 금리 구조는 개별 차주의 리스크 요인이 아니라 은행권의 포용금융 정책 강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일정 구간의 차주를 대상으로 금리를 일괄 인하하면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집단이 되려 더 낮은 금리를 받는 ‘수치상의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 정부 정책이 만든 구조… 취약계층 배려의 역효과
최근 정부는 금융 분야에서 ‘상생·포용’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대통령 역시 “금융 영역에 계급 구조가 존재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저신용·저소득층의 이자 부담 완화를 강하게 주문한 바 있다.
이에 발맞춰 은행권은 서민금융 상품의 금리를 인하하거나, 채무조정 프로그램 금리를 수십 조 단위로 줄여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은 ‘새희망홀씨Ⅱ’ 상품 금리를 1%포인트 인하했으며, 개인사업자·소상공인을 위한 여러 신용대출 금리도 13%에서 9.5%로 대폭 낮춘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저신용자 대상 상품의 금리가 빠르게 하향 조정되면서, 기존 신용등급 체계가 반영된 일반 신용대출 금리와의 관계가 뒤틀린 것이다.
■ 문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닐 가능성
은행권에서는 이번 역전이 단순한 한두 달의 착시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당국이 포용금융 실적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고, 각 금융지주가 앞으로 5년간 508조 원을 생산적·포용금융에 투입하기로 이미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 중 포용금융만 약 70조 원이 배정돼 있다.
정부는 오는 18일 주요 금융지주 CFO·CSO를 불러 포용금융 실행 상황을 직접 점검할 예정이다. 사실상 ‘지속적인 금리 완화 압박’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고신용자의 상대적 박탈감
대출시장 가격 체계 붕괴 우려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 부담 증가
등 구조적인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 소비자에게 주는 메시지
이번 금리 역전은 단순히 ‘일부 구간에서 금리가 바뀌었다’는 차원을 넘어, 금융시장 내 가격 형성 원리가 정책적 개입에 의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고신용·중산층에게는 새로운 대출 전략이 필요해질 수 있다.
특정 시점에는 정책상품이 더 유리할 수 있고
신용점수와 금리의 ‘직선적 관계’는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용금융의 취지 자체는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신용평가 체계와 금리 구조의 왜곡이 장기화된다면 금융시장의 다른 불균형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