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능과 인공지능(AI)이 가전업계의 흐름을 이끄는 시대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5~10년 전 출시된 ‘레트로 감성 가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복잡하지 않은 조작, 저렴한 가격, 그리고 익숙한 감성이 실용적 소비 트렌드와 맞물리며 새로운 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A씨는 10년 가까이 된 삼성전자 유선 청소기 ‘모션 싱크’를 여전히 사용 중이다.
무선 청소기가 대세인 요즘에도 A씨는 “무겁지만 튼튼하고, 단순한 기능 덕분에 고장이 거의 없다”며 “앞으로도 10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60대 주부 B씨 역시 최근 고장 난 드럼세탁기 대신 LG전자 통돌이 세탁기를 구입했다.
그는 “이불 빨래가 편하고 세탁 중간에 추가로 빨래를 넣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가격도 저렴하고 옛날 생각이 나서 정이 간다”고 전했다.
가전·유통업계에 따르면 삼성, LG 등 주요 제조사들의 5~10년 전 모델이 여전히 꾸준한 판매를 보이고 있다.
쿠팡에서만 LG 통돌이 세탁기(10kg) 모델은 최근 한 달 동안 2,000대 이상 판매됐으며, 가격은 약 33만 원 수준이다.
삼성전자 ‘모션 싱크’ 청소기 역시 사용자 후기의 77%가 ‘매우 만족’을 표시하며, 시골 부모님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는 ‘가성비’뿐 아니라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도 과거 인기 모델의 단점을 개선한 ‘레트로 리뉴얼 제품’을 지속 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 수리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공간 활용성과 유지보수 비용을 고려해 드럼세탁기에서 통돌이로 돌아오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기술 개선으로 성능은 좋아지고, 가격은 합리적인 점이 매력”이라고 분석했다.
전규열 서경대 겸임교수는 “레트로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경기 침체 속에서 실용과 안정감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의 반영”이라며 “과거 제품이 주는 심리적 위안감과 합리적 가격이 맞물린 결과”라고 진단했다.
가전시장은 지금,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들어섰다.
AI 기능이 넘쳐나는 첨단 제품 사이에서, 단단하고 단순한 ‘옛 가전’이 소비자 마음을 다시 사로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