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급락과 달러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며 원화값이 장중 달러당 1,450원 선까지 떨어졌다. 이는 약 7개월 만의 최저치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주식 매도와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가 맞물린 결과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1.5원 오른 1,449.4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1,443원에서 출발한 환율은 오전 중 꾸준히 상승하며 1,449.5원까지 치솟았다. 이로써 지난 4월 11일(1,457.2원) 이후 최저 원화 가치를 기록했다.

같은 날 코스피지수는 4,004.42로 전 거래일보다 117.32포인트(2.85%) 급락했고, 코스닥도 2.66% 하락한 901.89로 마감했다. 외국인들이 대거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환전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따라 원화 약세가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AI 기술주 고평가 논란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며 위험자산 회피 움직임이 커졌다”며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가 이어지는 한 환율 안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규모 대미 투자와 연기금의 해외 자산 비중 확대가 맞물리며 원화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한은행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미 투자 합의는 단기적으로 호재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금 유출에 따른 원화 약세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이 잇따르고 일본 엔화가 약세를 이어가는 점도 달러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 내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감이 줄어들며 엔화가치가 하락하자, 원화도 동조화 현상 속에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한국은행은 같은 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순대외자산(NFA)이 GDP 대비 55.7%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말(58.8%)보다 다소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순대외자산 증가는 대외 건전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해외 투자 확대가 국내 자본시장 기반 약화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이희은 한은 해외투자분석팀 과장은 “고령화로 인한 국내 자산 수익률 하락과 연기금의 해외 투자 확대가 NFA 비율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며 “과도한 해외 자산 편중은 장기적으로 환율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향후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근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글로벌 경기 둔화, 외국인 자금 유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추가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NFA 증가는 대외 건전성 강화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국내 투자기반 약화와 원화 약세 압력 확대라는 부정적 측면도 존재한다”며 “연기금의 국내 투자 확대 등으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원화 약세는 단기 시장 심리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까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 자산 비중 조정이 지속되는 한, 환율 안정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