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칩의 고성능화로 패키지 기판 한계가 드러난 가운데, 삼성전기가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손잡고 ‘유리기판(글라스 코어)’ 상용화에 속도를 낸다. 평탄도와 강성이 높은 유리를 코어층에 적용해 회로를 더 촘촘하게 깔고 발열·신호 손실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양산 목표 시점은 2027년 이후다.
삼성전기는 11월 초 도쿄에서 스미토모화학그룹과 ‘글라스 코어 제조 합작법인 설립 검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합작법인에는 삼성전기가 과반 투자자로 참여하고, 스미토모화학 및 자회사 동우화인켐이 추가 출자자로 나선다. 본사는 동우화인켐 평택사업장에 두는 방안이 유력하며, 내년 본계약에서 지분 구조·일정·법인 명칭을 확정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양산은 2027년 이후 합작법인과 함께 추진”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유리기판은 기존 유기(플라스틱) 코어를 유리 재료로 대체한 차세대 패키지 기판이다. 가장 큰 차별점은 두 가지다. 첫째, 높은 평탄도다. 표면이 고르게 유지돼 노광 공정에서 더 미세한 회로 구현이 가능하다. 둘째, 우수한 기계적 강성이다. 기판이 커져도 처짐과 휨이 적어 초대형 칩렛·대면적 패키징에 유리하다. 이 특성은 전기적 신호 감쇄와 발열을 줄이는 데도 기여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유지하면서 전력 소모를 낮추는 효과가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유기기판 대비 전력 효율이 최대 50% 개선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된다.
AI 서버 확산으로 HBM과 고대역 패키지가 급증하는 현 시점에서, 유리기판은 패키지 기판의 미세화 한계와 대면적화 문제를 동시에 풀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선행 업체들은 유리기판을 전제로 2030년대 대규모 트랜지스터 집적과 칩렛 아키텍처 고도화를 그려 왔다. 삼성전기-스미토모 연합은 각자의 소재·화학·기판 공정 역량을 묶어 공급망을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시장성도 나쁘지 않다. 글로벌 리서치에서는 유리기판 수요가 고성능 반도체(서버·네트워킹·AI 가속기) 중심으로 연평균 중한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유기기판 대비 원가·수율·대량생산성 등 과제가 남았지만, 공정 표준화와 장비 생태계가 갖춰지면 패키지 업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기 장덕현 사장은 “AI 시대엔 초고성능 패키지 기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며 “글라스 코어가 판도를 바꿀 핵심 소재”라고 강조했다. 스미토모 측도 “첨단 후공정에서 시너지를 극대화해 장기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동우화인켐은 평택 거점을 생산 허브로 삼아 소재-공정-기판을 잇는 체인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