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대외 관세 정책에 대한 최종 판단에 들어갔다.
쟁점은 단 하나 —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과에 따라 글로벌 무역질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한 100여 개국에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에는 처음 25%의 세율이 매겨졌으나, 이후 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15%로 낮춰졌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IEEPA는 대통령에게 무제한의 관세 부과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위법 판결을 내렸지만, 트럼프 측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5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구두 변론을 진행했으며, 3시간 가까이 이어진 공방에서 법정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트럼프 측은 “무역적자가 국가적 재앙 수준이며,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한 비상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원고 측인 중소기업 연합과 12개 주(州)는 “관세는 세금이며, 과세 권한은 오직 의회에 있다”며 대통령 권한 남용이라고 맞섰다.

보수 성향 대법관 일부는 과거 닉슨 대통령이 유사한 법률 아래에서 관세를 부과했던 전례를 언급하며 트럼프의 논리를 일부 인정하는 분위기를 보였으나, 다수의 대법관은 “비상사태를 이유로 무제한의 관세를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의 구도로 구성되어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통상 대법원 판결은 수개월이 걸리지만, 이번 사안은 국제적 파급력이 큰 만큼 이르면 수주 내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판결 결과에 따라 수출 환경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승리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15% 관세가 유지되거나 다시 인상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자동차, 철강, 배터리 등 주요 산업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 압박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대법원이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은 관세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며 안정적인 대미 수출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향후 한·미 통상 관계와 반도체, 전기차 관련 법안(IRA·CHIPS Act)의 실행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혹시 모를 패소에 대비해 대체 수단을 마련해 둔 상태다.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 등 기존 법률을 활용하면 특정 품목이나 국가에 새로운 형태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미국 행정부가 글로벌 무역에 개입할 수 있는 범위를 가르는 역사적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세계는 다시 ‘관세의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제동이 걸린다면 의회의 견제 기능이 복원되고, 글로벌 공급망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닌 정치적 상징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 상징이 계속될지, 혹은 헌법적 통제 속에서 막을 내릴지를 결정짓는 마지막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