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가 다시 한 번 ‘보너스 시즌’을 맞았다. 기술주 중심의 증시 랠리가 이어지면서 증권업계의 실적이 크게 개선돼, 연봉과 상여금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감사관실과 업계 통계에 따르면 뉴욕 증권업계 종사자들의 지난해 평균 보상액은 약 50만 달러(약 7억 원) 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7% 이상 증가한 수치로,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보너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업계 전체에 지급된 보너스 총액은 475억 달러(약 68조 원)로, 1인당 평균 약 24만 달러(3억 5천만 원) 수준이다. 뉴욕시 일반 민간근로자의 평균 보수(10만 달러 안팎)와 비교하면 약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기술주 랠리 덕분에 다시 불붙은 ‘보상 사이클’
보상 급증의 배경에는 기술주 중심의 증시 강세가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클라우드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하면서 트레이딩 수익이 크게 개선됐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원사들의 상반기 이익은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으며, 거래 관련 수익은 70%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인력 확보 경쟁도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데이터 분석, 퀀트, 알고리즘 트레이딩 분야 인재의 몸값이 오르고, 일부 증권사는 최고 실적자에게 수백만 달러의 성과급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의 함정…실제 체감은 달라
다만 “평균 7억 원”이라는 숫자는 실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상위 1~5% 초고액 연봉자가 평균치를 끌어올린 결과라며, 중앙값은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중간 단계의 딜러나 애널리스트 급에서는 연봉이 20만~30만 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
이런 구조적 불균형은 증권업계 내부의 임금 격차뿐 아니라, 일반 산업과의 임금 괴리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너스, 도시 경제의 엔진”
뉴욕주 회계감사관 토머스 디나폴리는 “증권업계의 이익 증가는 단순히 개인 보상뿐 아니라 뉴욕시의 세수와 공공서비스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보너스 지급은 주택·교통·교육 등 도시 인프라 투자 재원을 확충하는 핵심 동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월가에서 발생한 고액 보너스는 지역 경제의 소비 여력을 확대하고, 도심 오피스 시장과 고급 주택 수요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고소득의 그림자…리스크는 여전
하지만 이런 ‘돈잔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금리 변동, 인플레이션 지속, 기술주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질 경우, 내년 보너스 규모가 다시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규제 강화나 증권거래세 개편 논의가 이어질 경우, 증권사 실적이 압박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호황은 순환적 경기 요인이 크다”며 “보상 급등이 경기 정점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증권업계에도 시사점
국내 증권사들 역시 거래대금이 늘고 기업공개(IPO) 시장이 회복되면 비슷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브로커리지·리서치·데이터 분석 인력의 보상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다만 미국처럼 일부 초고액 연봉자 중심의 구조가 형성될 경우, 내부 인센티브 불균형과 인력 유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보상체계 설계가 관건으로 꼽힌다.
▲“평균보다 구조를 봐야”
전문가들은 “월가의 평균 연봉 7억 원은 상징적 숫자일 뿐, 중요한 건 임금 분포 구조와 지속 가능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너스 규모가 경기 정점의 신호인지, 혹은 AI·테크 중심의 새로운 장기 국면의 출발점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월가의 고액 보너스가 화려한 뉴스로만 소비되기보다, 글로벌 금융의 체질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로 읽힐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