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채무조정용 ‘배드뱅크(부실채권 정리 전담기구)’가 출범도 전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취약계층을 돕겠다는 명분과 달리, 도박·유흥 등 사행성 빚과 생계형 채무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누구는 탕감받고, 누구는 제외되는 불공정한 제도”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 구분 불가능한 채무, 선별 기준 ‘사각지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국회 질의에 대해 “금융회사는 대출자의 업종 코드로만 사행성 업종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뿐, 개인이 도박이나 투자 실패로 진 빚은 구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도박으로 진 빚’인지 ‘생활비로 낸 대출’인지는 차주의 자진신고 없이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이 ‘묻지마 채무조정’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정부가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식으로 배드뱅크를 운용할 경우,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대부업권 불참 시, 같은 빚도 다른 결말
문제는 채권의 ‘주인’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현재 새도약기금(배드뱅크의 전 단계)에 대부업권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은 조정 대상이 되지만, 이미 대부업체로 넘어간 채권은 감면 대상에서 제외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이 보유한 부실채권 약 12조9천억 원 중 절반 이상(약 6조7천억 원)을 대부업체가 들고 있는 만큼,
이들의 협조 여부가 제도의 공정성을 좌우할 전망이다.
캠코 관계자는 “대부업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금융당국 및 대부금융협회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이익이 없는 구조에 대부업체가 적극 동참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 취약층 구제 의도, 오히려 ‘역차별’ 논란으로
은행권 대출이 막힌 취약계층은 고금리 대부업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이들이 배드뱅크 감면 대상에서 빠지면 ‘가장 어려운 사람은 도움을 못 받는’ 모순이 발생한다.
반면 도박·투자 실패 등으로 빚을 낸 차주는 ‘선별 불가능성’ 덕분에 오히려 구제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정부의 재기 지원 정책이 도덕적 논란과 형평성 위반을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정책 설계, 정교함이 필요하다”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은 “정책 설계가 섬세하지 못하면, 오히려 국민 불신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부업권 참여 유도와 채무 성격 구분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 전문가들 역시 “채무조정 정책은 단순한 ‘탕감’이 아니라 ‘재활’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며
행태개선 프로그램·금융교육 연계형 조정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 기자의 시각 — ‘구제의 선, 공정의 경계’
배드뱅크는 원래 사회적 재기를 돕기 위한 제도지만, 그 선이 모호해질수록 공정성은 흔들린다.
‘도박빚도 탕감받는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정책의 정당성은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
이 제도가 진정한 회생의 사다리가 되려면,
① 채무 성격별 선별 기준 명확화,
② 채권 보유주체 간 형평 확보,
③ 도덕적 해이를 억제할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