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중소·벤처기업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강화되고 정부가 ‘생산적 금융’ 전환을 압박하면서, 은행권이 다시 기술신용대출(TCB·Technology Credit Bureau)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58조8,906억 원으로, 전월 대비 2조2,248억 원 늘었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큰 월간 증가폭이다.

기술신용대출은 매출이나 담보력이 부족해도 기술력과 사업성 평가를 통해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제도다. 2014년 도입 이후 창업 초기 벤처기업의 주요 자금줄 역할을 해왔지만, 지난해 기술평가 기준이 엄격해지며 성장세가 둔화됐다. 그러나 올해 4월부터 반등세로 돌아서 6개월 연속 확대되고 있다.

하반기 들어 증가폭은 더욱 커졌다. 7월 786억 원, 8월 1조3,066억 원, 9월 2조2,248억 원으로 급등했다. 금융권은 가계대출 총량이 묶이자,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낮고 정책적으로 장려되는 기업대출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한 결과로 분석한다.

같은 기간 특허·상표 등 지식재산(IP)을 담보로 하는 대출도 소폭 늘었다. 지난해 말 1조3,393억 원에서 9월 1조3,526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기술 기반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점차 다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전문가들은 ‘양적 회복’에만 치중할 경우 과거의 부실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력 있는 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과거에는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내준 사례도 있었다”며 “정책 취지에 맞게 기술기업을 육성하고 평가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과제는 ‘속도’보다 ‘질’이다. 평가모형 편향을 줄이고, 사후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기술신용대출이 진정한 혁신산업 자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이번 반등은 기술신용대출이 ‘정책 드라이브’에 따른 단기 현상이 아니라, 혁신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금융 생태계로의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