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K2 전차가 폴란드와의 두 번째 대규모 수출 계약을 확정하면서, 한국 방위산업의 수출 전략이 한 단계 진화했다. 단순히 전차 완제품을 파는 데서 벗어나,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을 포함한 ‘생태계 수출’로 전환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 9조원 규모로 계약…한국 방산사상 최대 단일 수출
이번 계약으로 폴란드는 한국산 K2 전차 180대를 추가로 들여온다. 2022년에 맺었던 1차 계약과 물량은 같지만, 이번 계약금액은 두 배 가까이 오른 약 9조원(67억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한국 방산 단일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다.
그 배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유럽 전반에서 방위력 강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폴란드 역시 국경 방어를 위해 한국산 무기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 기술이전 포함, ‘현지화’로 전환
1차 수출이 완제품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폴란드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식이 포함됐다. 한국에서 생산해 직접 공급하는 물량은 117대,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이 현지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63대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한국 현대로템은 폴란드에 생산라인 구축을 지원하고, 제조 노하우를 전수한다. 사후 유지·보수(MRO)까지 포함해 계약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현지 산업을 키우는 파트너로 자리 잡은 셈이다.
📌 “K방산 생태계” 수출의 의미
이런 방식은 한국 방산이 이제는 ‘생태계’를 수출한다는 의미다. K2 전차 자체가 높은 국산화율(90% 이상)을 자랑하고 있어 부품 공급망이 국내에 잘 구축돼 있다. 120개가 넘는 국내 협력업체가 공급을 맡고 있어 이번 수출로 한국 산업 전반에도 긍정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더 나아가 폴란드 내 생산 거점이 마련되면, 이후 3차·4차 추가 도입 계약에도 유리하다. 현지 생산이 가능해지면 폴란드는 앞으로도 장기간 K2 전차를 운용하며 한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
📌 유럽의 방산 자급 흐름과 한국의 전략
세계 각국이 방산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적 전환은 불가피하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으며, 각국이 무기를 자급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한국 방산 기업들도 “완제품을 팔아치우고 끝”이 아닌, 기술이전·현지 생산·로열티·부품공급·MRO 지원까지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수출 모델을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주군의 차세대 장갑차를 호주 현지에서 생산하는 계약을 따냈고, 루마니아에서도 K9 자주포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페루에서 FA-50 경공격기 부품을 현지 생산하는 협약을 맺었다.
📌 단일 계약 넘어선 파트너십
결국 K2 전차의 9조원 2차 계약은 단일 무기 판매가 아니라 ‘장기 파트너십’의 출발선이다. 폴란드군이 K2 전차를 중심으로 전술을 재편하는 만큼, 수십 년간 유지·보수, 업그레이드, 부품 공급 등에서 한국 기업이 참여할 기회가 열렸다.
한국은 과거 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K방산의 기틀을 다졌지만, 이제는 그 기술을 해외에 전수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번 수출은 한국 방산이 단순한 제조업을 넘어서 전략산업으로서 성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