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보면, 마치 휴대용 기억장치 같습니다.
회의록도, 중요한 말도, 친구와의 농담도, 심지어 책 한 페이지의 문장까지 카메라로 찍어 저장합니다.
“나중에 보려고” 찍지만, 정작 다시 보는 일은 드물고, 머릿속에는 거의 남지 않습니다.

사진이 너무 쉽고 빠른 기록 수단이 되면서, 우리 뇌는 기억하고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일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 아닐까요?
모든 것을 저장해 두었으니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 사진은 기록인가 창작인가

물론 사진에는 예술이 있습니다.
빛을 담고 구도를 고민하고 찰나의 감정을 포착하는 사진가의 창작이 있죠.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진은 그런 창작과는 거리가 멉니다.
회의록 대신 화이트보드를 찍고, 책에서 밑줄 긋는 대신 페이지를 통째로 스캔합니다.

창작이 아니라 기록을 넘어서서 *‘복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왜 기록하는가에 대한 사유 없이, 마치 모든 정보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강박처럼.

📌 기록의 편리함이 상상력을 줄인다

문득 생각합니다.
인간이 상상력을 키워온 것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완벽히 기록할 수 없으니 이야기로 만들고, 비유로 전하고, 시로 감정을 남겼습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열 문장을 지워보고,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사전을 넘기며 사유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찍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기억은 남지만 사유는 남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장된 사진조차 언젠가 찾아보기 어려운 잡동사니가 되어버립니다.

📌 AI 생성의 시대, 인간의 생성은?

이제는 AI가 문장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생성’마저 인간의 손을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편리하다고 느끼면서, 과연 상상력의 근육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요?
AI가 제공하는 문장을 받아쓰기만 하고, AI가 만든 이미지를 소비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마음속 이야기, 우리의 상상은 어디로 갈까요?

📌 나는 오히려 책을 읽고 싶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오히려 책을 읽고 싶습니다.
누가 요약해준 문장 말고, 누가 찍어준 페이지 스캔본이 아니라,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문장과 씨름하고 싶습니다.
남의 생각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튀어나오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말로, 내 글로 적어보고 싶습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록이 아니라 상상력

스마트폰은 계속 좋아지고 카메라는 점점 선명해질 겁니다.
AI는 더 똑똑해지고 글도 그림도 음악도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저장 용량이 아니라 상상력입니다.
기록이 아니라 창작이고, 캡처가 아니라 해석이고, 복사가 아니라 재구성입니다.

우리가 찍기만 하고 읽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성해주길 AI에게만 부탁한다면,
인간이 가진 고유한 상상력은 점점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 상상력이야말로 우리가 우주보다 더 큰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힘인데 말이죠.

그래서 오늘 나는 한 장의 사진 대신 한 줄의 문장을 적어두려 합니다.
그리고 그 한 줄을 기억하고, 내 방식으로 상상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