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준비하거나 재취업을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서 ‘안전관리자’ 자격증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20대 청년부터 경력을 쌓은 직장인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이 자격증을 준비하는 모습은 한국 고용시장의 현실과 깊이 맞닿아 있다.
서울의 한 도서관에서 만난 20대 취업준비생 김지훈(가명) 씨는 매일 몇 시간씩 산업안전기사 강의를 듣는다. “취업이 너무 어려워서, 안전관리자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지방 중소기업이라도 갈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다”며 “요즘엔 ‘기사 자격증 두 개는 기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채용 공고에는 ‘안전관련 기사 자격증 우대’라는 문구가 흔하다. 대형 채용 플랫폼에서 ‘산업안전기사’로 검색하면 수천 건의 구인 공고가 쏟아진다. 법적으로 안전 인력을 반드시 두어야 하는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처법’ 이후 더 뜨거워진 수요
이 자격증이 각광받게 된 계기 중 하나는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다. 이 법은 사업장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과 경영책임자가 직접적인 책임을 지도록 규정한다. 실제 판결에서 유죄율이 90%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갖추고, 이를 이끌 전문 인력을 반드시 채용해야 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안전관리자 채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특히 중소기업들도 의무를 지키려면 자격증 소지자를 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제는 필수 스펙”…응시자 급증
한국산업인력공단 통계에 따르면 산업안전기사 시험 응시자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20대 비율이 가장 높아, 취업을 노리는 청년층이 이 자격증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이 자격증을 취득한 미취업자 10명 중 6명이 1년 이내 취업에 성공해, 국가기술자격 평균 취업률을 크게 웃돌았다.
한 직장인은 “우리 회사는 자격증 보유자에게 매달 30만 원의 수당을 준다”며 “나중에 직무 이동이나 승진 때도 도움이 될까 싶어 준비한다”고 했다. 건설업이나 제조업 같은 업종에서는 안전관리자 의무 채용이 점점 확대되면서 직장인에게도 매력적인 ‘플랜B’가 되고 있다.
시험 난이도도 상승…학습 방식 변화
이 자격증의 인기가 커지자 시험 제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기출문제를 달달 외워서 합격하는 수험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출제범위가 확대되고 내용이 전문화되면서 단순 암기로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자격증 학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출문제만 반복하면 됐는데, 이제는 법규 이해와 계산문제까지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며 “수험생들도 이론 강의로 기초를 잡고 심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단순 채용 넘어 역할 강화 필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전관리자 자격증 취득이 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노무사 김은복 씨는 “중소기업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이유는 안전인력이 부족하거나 있어도 권한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사람을 채용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실제로 안전보건을 관리하고 개선할 권한과 예산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의지도 변수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규제와 감독이 강화되면 기업들의 안전관리자 채용 수요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자격증 시장도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업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산업안전기사는 취준생과 직장인 모두에게 ‘취업보험’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다만 자격증이 끝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의 전문성과 권한이 함께 보장돼야 중대재해를 막는 진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