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보험사가 오래된 실손보험을 시장에서 회수하는 방안을 사실상 가동 단계에 올렸다.
보장 범위가 넓고 자기부담금이 낮아 의료 과다 이용 논란의 중심에 서온 1·2세대 실손보험이 개혁의 핵심 대상으로 꼽혀온 만큼, 재매입 제도는 실손보험 구조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첫 수술이 될 전망이다.

■ “옛 실손, 보험사가 직접 사들인다”… 정책 논의 급물살

최근 금융 당국은 보험사들을 잇달아 불러 구세대 실손보험 계약을 회사가 다시 매입하는 제도의 실행 가능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각 사 실무진과 협회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라, 실질적인 운영 모델을 마련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재매입 논의가 빠르게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약 2,000만 건에 달하는 구세대 실손 계약,

기존 약관을 바꿀 수 없어 늘어나는 손해율,

왜곡된 의료 이용 패턴
등이 결합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

지난 10여 년간 등장한 새로운 실손보험은 보장 범위를 조정하며 합리성을 높였지만, 옛 계약은 개정 약관을 적용할 수 없어 통제 장치 없이 시장에 남아 있었다. 이번 재매입 제도는 이 ‘손댈 수 없는’ 계약을 정리할 첫 공식 장치가 된다.

■ 의료 쇼핑의 진원지… 1·2세대 실손의 구조적 왜곡

초기 실손보험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혜택이 넉넉했다.
비급여 진료까지 폭넓게 보장해줘, 도수치료·미용성 시술·비급여 MRI 등에서 과잉 의료 소비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통로로 지적돼 왔다.

특히 문제는 이용의 불균형이다.
실손보험금의 상당 부분은 상위 9%의 가입자가 가져가고 있으며,
정작 65%의 가입자는 보험료만 내고 한 번도 보험금을 타지 않는 구조가 고착됐다.
결국 일부 가입자의 반복 진료가 전체 보험료 인상과 손해율 악화를 유발하는 악순환을 만든 셈이다.

■ 고객에게는 ‘목돈’, 보험사에는 ‘손해율 정상화’

보험사들의 회수 제안은 고객 입장에서도 일정한 매력 요소를 갖는다.
보험료만 꾸준히 내고 혜택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 가입자들은 재매입을 통해 즉시 현금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가입자가 다년간 유지해온 구세대 보험을 정리할 유인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소비자 혼란을 막기 위해

· 설명 의무 강화

· 숙려기간 마련

· 고객 보호 절차 확립
등의 장치를 포함한 제도 설계를 추진할 예정이다.


■ 선택형 특약 도입도 병행… 보험료 20~30% 경감 전망

정부는 장기적으로 실손보험 구조 자체를 다층화하는 개편도 함께 추진한다.
구세대 가입자가 필요 없는 보장을 뺄 수 있도록 하는 선택형 특약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미 2021년 출시된 3세대 실손이 비급여 3대 항목을 특약으로 분리하며 보험료를 20~30% 절감한 사례가 있어, 구세대 실손도 비슷한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비급여 항목을 축소해 손해율 부담을 낮출 수 있어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다.

■ 보험 재정·건보 재정 모두 압박… 개혁의 시급성

실손보험은 이미 3년 연속 1조 원대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여기에 실손 가입자의 과잉 이용으로 인해 건강보험공단이 추가 부담하는 비용이 8조 원대에 이를 정도로, 사회 전체 의료 재정에 구조적 충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손보험 개혁은 민간보험의 문제를 넘어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필수 과제”라고 평가한다.
과도한 보장이 특정 진료과로 의료진을 쏠리게 하고, 필수의료 공백을 키우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