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정년 제도를 정면으로 다루며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과 연금 개시연령 조정을 포함한 패키지 개혁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단순히 법적 정년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는 기업 부담만 키우고 청년층 일자리 축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제시됐다.

■ 고령층 조기 퇴직·재취업 반복…“이례적 구조”

IMF는 한국의 고령층 노동 구조를 다른 선진국과 비교한 뒤, 조기 퇴직과 재취업이 반복되는 특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실제로 60세 이상 고용률은 지난 15년간 빠르게 증가한 반면, 청년층 고용률 상승폭은 미미해 세대 간 고용구조의 불균형이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IMF는 “고령층의 노동시장 잔류가 증가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고용 형태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단순 고용 확대가 아닌 구조적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정년만 늦추면 기업 부담 가중”…임금체계가 핵심

보고서는 한국에서 정년연장 논의가 반복될 때마다 문제로 제기되는 ‘임금구조 경직성’을 다시 짚었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정년을 늘릴 경우 고령층 인건비가 상승하고, 기업은 조기퇴직을 늘리거나 청년 채용을 줄여 비용을 맞추는 대응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IMF는 “정년만 늘리는 방식은 정책 효과가 빠르게 약화된다”며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전환이 선행될 때 고용 구조가 안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정년 65세 논의 속…IMF “연금은 68세부터 지급해야”

눈에 띄는 대목은 연금 수급 개시연령 조정 제안이다. IMF는 한국의 국민연금 재정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정년이 65세까지 확대된다면 연금은 68세부터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OECD 분석을 인용한 IMF는 연금 개시를 68세로 늦출 경우 장기적으로 총고용이 14% 늘고, 2070년 GDP는 12%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러한 전망은 고령층의 생산성이 일정 수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가능한 결과라고 조건을 달았다.

■ 정규직 보호 완화·유연근무 확대 등 병행 과제 제시

IMF는 정년연장 효과를 높이기 위한 조건으로 ‘고용보호 유연화’를 제시했다. 한국은 정규직 보호 강도가 높아 기업이 인력 구조조정을 자유롭게 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생산성이 낮아진 고령 근로자를 정년까지 고용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기업은 신규 채용 축소나 비정규직 전환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또한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재택근무, 시간제 근무 등 유연근무제 확대와 디지털 역량 교육 강화도 권고했다. IMF는 “AI 및 디지털 기술 역량을 갖춘 고령 근로자는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 격차를 줄이는 것이 고령층 고용의 지속성에 핵심”이라고 밝혔다.


■ 기자 시각: ‘정년 65세’ 논쟁, 이제는 제도 묶음으로 논의해야

IMF의 이번 보고서는 정년 문제를 단독 과제가 아니라 연금·임금·고용보호 제도와 함께 다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고령층을 무조건 오래 고용하는 방식은 기업과 청년층에게 각각 다른 부담을 지운다.
IMF가 제시한 패키지 개혁은 “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체계는 탄력화하고, 연금은 늦게 받으며, 고용보호는 유연화하는” 구조다. 결국 세 가지 제도는 하나의 축으로 움직여야 하며, 어느 한 요소만 건드리면 다른 영역의 부담이 더 커지는 구조라는 의미다.
정년 논쟁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번 보고서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무엇을 우선 논의해야 하는지 방향을 다시 제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