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협력사만 8,500곳…노란봉투법 시행 앞두고 “정상적인 경영 어려워진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둔 산업계가 깊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내년 3월부터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조합과도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경영 부담이 사실상 폭증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24일 공개한 시행령 개정안은 원청과 하청 노조가 공동교섭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중앙노동위원회가 교섭 상대를 직접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복잡한 원·하청 구조를 고려해 ‘조건이 유사한 하청 노조들끼리 공동교섭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업들은 기준이 모호해 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협력사 수천 곳…“누구와 교섭해야 하는지부터 불명확”

대규모 협력사 네트워크를 가진 업종일수록 충격이 크다.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인 현대자동차는 사내외 협력사가 약 8,5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업의 HD현대 또한 약 3,900개 협력사를 보유하고 있다. 건설업 역시 원도급·전문건설·현장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 아래 현장당 수십~수백 개 협력업체가 얽혀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하청 노조의 교섭 창구를 어떻게 단일화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 핵심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들은 “지금도 대표 교섭권을 가진 원청 노조와 임단협을 마치는 데 한 해가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며 “수십, 수백 개의 새로운 교섭 창구가 생기면 사실상 1년 내내 교섭만 하게 될 것”이라고 토로한다.

■ 조선·건설·철강 등 하청 비중 큰 업종 ‘직격탄’

고용노동부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제조업에서 외부 소속 근로자로 분류되는 하청 노동자는 약 31만7,000명에 이른다. 업종별로는 조선업의 사내하청 비중이 63%로 가장 높고, 건설이 44.3%, 철강이 35.6%, 전자부품·컴퓨터가 16%, 자동차가 10.2% 순이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이 임금 또는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판단될 경우,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시행령에는 노동위원회가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의 지배력을 인정할 경우, 원청이 교섭 절차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경기 둔화, 고금리, 원가 증가 등으로 이미 부담이 큰 업종일수록 교섭 확대는 더 큰 압박이 될 전망이다. 한 건설업 연구기관 관계자는 “경기는 악화되고 안전비용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노무 리스크까지 추가되는 셈”이라며 “업계가 당분간 극심한 경영 부담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하청사 정보 부족한 상태에서 교섭…법적 분쟁 가능성도

현장의 또 다른 우려는 원청이 하청사의 경영상황과 재무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과도한 비용 요구나 불합리한 조건 설정으로 이어져, 하청사의 경영 악화나 법적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높인다.

또 다른 위험은 ‘노노 갈등’이다. 기존에는 복수노조가 존재해도 대표 교섭 창구는 하나였지만, 앞으로는 하청 노조가 별도로 교섭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원청 노조가 교섭권 확대를 요구하는 등 새로운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 “기준 불명확”…노동위·법원 해석 따라 혼란 커질 위험

정부는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을 원청 사업장을 기준으로 단일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경영계는 이 같은 불확실성이 향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4대 그룹 한 관계자는 “원청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고, 누구와 교섭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불분명하다”며 “이대로라면 기업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신규 고용과 투자를 줄이는 보수적 경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남은 과제…“취지는 이해하나, 현실 고려한 보완입법 필요”

노란봉투법의 본래 목적은 하청 노동자 보호와 원청의 책임성 강화에 있다. 하지만 협력사 수천 곳을 두고 있는 한국 제조·건설 구조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경우, 제도 시행이 오히려 산업 현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청의 책임 범위와 교섭 단위 기준을 명확히 하고, 업종별 현실을 반영한 세부 지침을 마련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내년 3월 시행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정부가 어떤 보완조치를 마련할지가 산업계 최대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