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80원 선을 위협하며 연중 최저 수준의 원화 가치를 기록하자, 정부와 한국은행, 그리고 국민연금이 한자리에 모였다. 급격한 달러 강세 흐름이 외환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보유한 대규모 해외자산의 환헤지 여부가 시장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4자 협의체 출범…국민연금도 ‘외환 안정’ 논의 테이블 참여
24일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이 참여하는 외환시장·연금운용 협의체가 처음으로 열렸다.
이번 협의체는 “해외투자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만큼, 수익성과 시장 안정을 함께 고려하겠다”는 취지에서 신설됐다.
정부는 최근 환율 급등의 배경 중 하나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와 이에 따른 달러 매수 수요 증가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반면 국민연금은 그간 “연금의 최우선 원칙은 수익성”이라며 무리한 시장 개입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협의체 출범은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환헤지 재개’ 가능성이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 702조 해외투자…환헤지 10%만 적용해도 시장 영향 막대
현재 국민연금 전체 자산은 1,213조 원, 그중 해외투자 비중은 약 702조 원(58%)이다.
국민연금이 적용할 수 있는 환헤지는 크게 두 가지다.
● 전술적 환헤지
기금운용본부가 시장 상황에 맞춰
해외자산 대비 ±5% 범위에서 수시 조정하는 방식.
● 전략적 환헤지
환율이 장기 평균 대비 크게 이탈할 때
기금운용위원회 승인 후 최대 10%까지 적용하는 구조.
국민연금은 올해 초까지 제한적으로 전략적 환헤지를 시행했지만, 이후 추가적인 헤지는 하지 않았다.
만약 환헤지를 재개한다면 달러 매도 물량이 시장에 유입돼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 환율, 1480원대 근접…올해 들어 가장 낮은 원화 가치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5원 떨어진 1,477.1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원화 가치이며, 야간 거래에서는 1,480.2원까지 치솟아 심리적 저항선을 터치했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 재정 부담 확대,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 정부의 딜레마…“수익성 vs 환율 안정”
국내외 금융기관들은 다음 두 요인을 중심으로 향후 협의체 논의를 주목하고 있다.
· 국민연금의 수익성 원칙
환헤지는 비용이 발생하며 장기 성과에도 영향을 준다.
· 정부·한은의 외환시장 안정 목표
환율 급등 시 기업·가계·수입물가 등 충격이 커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는 14일 긴급 시장점검회의에서도 “국민연금 등 주요 수급 주체와 환율 리스크 관리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협의체 발족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 전망: 환헤지 재개 시 원화 회복 가능…그러나 부작용도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실제로 환헤지를 재개할 경우
단기간 달러 매도→원화 강세→환율 안정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 연금의 수익성 훼손 가능성
· 정책적 개입 논란 재점화
· 연금운용의 독립성 문제
등의 부작용이 제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성급한 결론보다는 중장기적 외환수급 구조 개선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