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들이 올해 배정된 가계대출 한도를 대부분 소진하면서 사실상 ‘대출 문 잠그기’에 돌입했다. 집을 사기 위한 실수요자들이 몰린 가운데 금융당국이 하반기 총량 규제를 더욱 조이자, 은행들이 앞다투어 주택담보대출 창구를 닫는 초유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 연초 계획보다 33% 더 늘어난 가계대출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이달 20일 기준 7조 8천억 원을 넘어섰다.
이는 이들 은행이 금융당국에 제출했던 연간 목표치(약 6조 원)의 33% 초과다.

금융당국은 올해 6월 ‘6·27 대책’에서 가계대출 증가율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라고 주문한 바 있다. 사실상 “대출을 더 늘리지 말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지면서 각 은행은 막판에 대출 취급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 KB·하나부터 문 닫아…“신규 주담대 중단”

대출 증가가 가장 빨랐던 KB국민은행은 24일부터 주택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을 온라인·오프라인 모두 중단했다.
기존 타 은행 대출을 갈아타는 대환대출과 대표 비대면 신용대출 상품도 함께 막혔다.

하나은행도 25일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영업점에서 신규 접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올해 실행 물량을 모두 채웠다는 의미다.

■ “우리도 언제든 막힐 수 있다”…3개 은행 남았지만 불안 고조

현재 신한·우리·NH농협은행은 주담대 접수를 유지하고 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신한은행은 “대출 쏠림이 발생하면 즉각 제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우리은행은 영업점별 부동산 관련 대출 한도를 월 10억 원으로 묶어두고 있어, 비대면 채널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농협은행은 유일하게 여유가 남아 있지만, 실수요자들이 이 은행으로 몰리며 혼잡이 심화되고 있다. 인터넷은행 역시 예외가 아니다. 카카오뱅크에서는 주담대가 열리자마자 ‘오픈런’으로 한도가 소진되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 주담대 막히자 신용대출로 몰려…‘풍선효과’ 극심

주담대 줄이기 여파는 신용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신용대출은 1조 3천억 원 넘게 늘었고, 그 속도는 2021년 이후 가장 가파르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파트 계약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용대출을 이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며 “주식 투자 목적의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폭증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 “실수요자 피해 불가피”…총량 규제의 역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총량 규제 방식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연초 은행들이 제출한 대출 목표에는 이미 부동산 시장 상승을 반영한 수요 예측이 포함되는데, 이를 기계적으로 절반으로 줄이도록 지시한 것은 현실을 외면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집을 실제로 사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연말 대출창구가 막히며 ‘잔금 공포’에 직면했고, 시장 전체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