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40년을 목표 시점으로 석탄발전소 40기를 먼저 문 닫고, 남아 있는 21기에 대해서도 추가 폐지 여부를 공론화하기로 했다.
현재 석탄발전은 국내 전력 생산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발전 비중은 약 28% 수준이다. 정부는 이를 2038년경 10% 안팎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문제는 숫자다.
발전소 1기를 평균 500MW급으로 가정하면, 40기를 없앨 경우 약 20GW 규모의 설비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이는 1GW급 원전 20기가 새로 필요한 수준이다.

이미 정부는 2038년까지 신규 원전 2기를 짓겠다고 밝혔지만, 석탄 대체 물량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 1기를 설계·입지선정·인허가·건설까지 마치려면 통상 10년 이상, 길게는 15년 내외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 LNG·원전·재생에너지, 다 합쳐도 ‘시간·비용’의 벽

윤석열 정부는 기존 전력수급 계획에서 석탄발전을 LNG발전으로 상당 부분 대체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경우 발전비용 부담이 크게 튈 수밖에 없다. 현재 가격 기준으로 석탄 대신 LNG를 쓰면 발전 단가가 약 30% 가까이 올라간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원전이 ‘만능 카드’인 것도 아니다.

신규 원전 부지는 지역 반발과 정치적 갈등이 불가피하고

안전성·폐기물 처리 논쟁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재생에너지의 한계도 뚜렷하다.
태양광 발전만 놓고 보더라도 1kW 설비를 설치하는 데 약 10㎡ 안팎의 토지가 필요하다. 석탄발전소 40기가 생산하던 전력을 태양광으로 대체할 경우 수십~수백 ㎢ 단위의 광대한 부지가 필요하다. 서울 면적의 수십 퍼센트에 가까운 땅을 패널로 덮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풍력·해상풍력 확대 계획도 있지만, 인허가와 민원, 송전선로 건설 갈등 등으로 현실화 속도는 더디다. 결국 “석탄을 줄이는 속도와 대체전원을 확보하는 속도가 맞느냐”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셈이다.

■ AI 데이터센터·반도체 공장…새 전력 블랙홀 등장

탈석탄 이슈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AI 시대의 전력 수요 폭증’**이다.

국내 데이터센터가 현재 사용하는 전력은 연간 수 TWh 수준이지만, 향후 AI 전용 데이터센터와 초대형 반도체 팹이 본격 가동되면 수요는 지금의 몇 배로 뛸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전망에선 2030년대 후반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현재의 약 4배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제시된다.

1GW급 원전 1기가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이 대략 10TWh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데이터센터 전력만 놓고도 원전 여러 기에 해당하는 추가 설비가 요구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한쪽에선 석탄발전을 줄이면서

다른 한쪽에선 AI·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새로운 ‘전력 블랙홀’로 떠오르는 구조다.

이 상황에서 대체전원 확보 전략이 부실하다면, 산업경쟁력부터 가정용 전기요금까지 광범위한 충격이 현실화될 수 있다.

“탈석탄은 방향 맞지만, 속도·수단 없는 선언은 위험”

전문가들은 “탈석탄 자체는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면서도, 속도 조절과 에너지원 믹스 전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심각한 전력난과 요금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에너지정책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석탄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언제까지, 어떤 비용으로 채울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현실적인 원전·가스·재생에너지 조합과 수요관리 대책이 동시에 나와야 합니다.”

또 다른 원자력공학계 인사는
“2040년까지 모든 석탄 발전량을 원전으로 대체한다는 가정을 하면, 사실상 매년 원전 여러 기를 지어야 하는 수준이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과격한 목표 설정보다 단계별 시나리오와 백업 플랜(Plan B)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 독일 사례가 남긴 경고…“연료만 바뀐다고 끝나지 않는다”

유럽은 이미 탈석탄·탈원전 실험을 한 국가들이 많다. 그중 독일의 사례는 한국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석탄과 원전을 순차적으로 줄였지만,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 급등

에너지 안보 불안

막대한 재정 투입
이라는 부작용을 겪었다.

정부가 석탄발전 축소를 위해 수십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보상을 책정해야 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가스 가격 급등으로 전력시장까지 크게 흔들렸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용 연한이 남은 석탄 설비를 비교적 빠른 시점에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보상과 지원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공기업이 주력 발전사를 맡고 있다는 구조도 재정·요금 논쟁을 키울 요인이다.

■ ‘넷제로’와 ‘전력안보’ 사이, 선택 아닌 설계의 문제

탈석탄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과 국제 공조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 문제는 “속도와 수단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AI와 반도체로 상징되는 전력 집약적 산업을 키우면서 동시에 석탄을 줄이겠다면,

· 원전·LNG·재생에너지의 현실적인 조합

· 수요관리 및 효율화 정책

· 지역·산업계와의 보상·지원 모델이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탈석탄 열차는 이미 출발했다.
이제 필요한 건 “석탄을 줄이겠다”는 구호가 아니라,
언제, 무엇으로, 얼마의 비용을 들여, 어떤 산업 구조와 함께 에너지 전환을 완성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설계도다.

그 해답의 완성도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전력안보와 AI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좌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