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세운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은 지역 거점국립대를 키우겠다는 전략이지만, 단순히 서울대를 복제하는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비판이 국회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각 대학이 고유한 강점을 살려 분야별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 “하버드 따라 하다 망한다”…서울대식 복제 정책 경고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 균형성장을 위한 지속가능한 대학 생태계 구축’ 토론회에서 교육·산학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표현이 자칫 ‘서울대식 대학 모델을 전국에 복제하자’는 잘못된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ASU가 스스로를 ‘하버드를 닮은 대학’이 아니라, 지역과 산업을 기반으로 혁신하는 대학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미국 최고의 혁신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한국도 ‘서울대급 대학 10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대학 10곳을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부회장)도 “MIT, 취리히연방공대(ETH), 난양공대, 알토대 등은 모두 특정 명문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생태계 속에서 경쟁력을 축적한 대학”이라며 “서울대식 서열 구조를 확대하는 접근은 지역·대학·산업 모두에게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 “학생이 진짜 가고 싶은 대학인가”로 정책 재점검해야
이번 토론회는 교육부와 국회 교육위원장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에서 지역 거점국립대가 핵심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고민정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는 축사에서
“정책의 출발점은 ‘내 아이가 정말 가고 싶어하는 대학인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며
“각 권역 거점국립대가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간판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 특정 학문·산업 분야 경쟁력,
· 지역사회·산업과의 연계성,
· 졸업생의 진로·일자리
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수도권 선호 해결 없이는 인재 정착도 불가능”
지역거점국립대 육성만으로는 ‘수도권 블랙홀’ 현상을 돌리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나왔다.
고창섭 충북대 총장은 “국내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너무 강해, 지역대학이 아무리 노력해도 졸업 후 일자리가 수도권에만 몰리면 인재는 다시 떠난다”고 말했다.
이어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지역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작업이 병행되지 않으면 대학 정책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지방 사립대 “우리는 구도에 안 보이는 존재”
정책 논의가 거점국립대 중심으로만 흘러가면서 지방 사립대의 소외감도 토로됐다.
강원 원주 소재 상지대 라이즈(RISE) 사업단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큰 그림 속에서 지방 사립대는 ‘새우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며 “인구 감소, 신입생 미충원 충격은 지방 사립대가 훨씬 더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며 지원 체계의 구체화를 요구했다.
그는 “지방 사립대는 지역사회와 산업 현장의 최전선에 있지만, 정책 테이블에서는 늘 한발 뒤에 서 있는 느낌”이라며 “국가균형발전을 진지하게 추진하려면 지방 사립대 역할도 분명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서울대 10개라는 이름, 바뀔 수도”…정책 재설계 시사
좌장을 맡은 홍창남 부산대 교수(전 국정기획위원회 사회2분과장)는 “그동안 ‘서울대가 정말 전국 대학의 유일한 모델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며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표현은 국민에게 정책 방향을 단순하게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국정과제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이 정책의 명칭과 내용이 재설계될 여지가 있다”고 말해, 슬로건 변경 가능성도 내비쳤다.
■ 교육부 “지방대 육성방안 12월 발표…지역 일자리와 함께 연계”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 ‘5극 3특 산학혁신 벨트’ 구축,
· 권역별 공동연구소 및 공유캠퍼스 조성,
· 지역대학 동반성장 플랫폼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방시대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 지역 청년 일자리 확대,
· 정주 여건 개선
에도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토론회에서 제시된 사례와 제안을 바탕으로 올 12월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안’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