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장기 지연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며 “불필요한 지체는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회담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열릴지’가 향후 미·러 관계의 방향을 가를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 “양측 모두 시간 낭비 원치 않아”
26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통신 리아노보스티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 국영방송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회담을 지나치게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두 정상이 단순히 보여주기식 회담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형식적 만남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양측 모두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페스코프 대변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지금은 회담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푸틴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두 정상은 외무 당국에 회담의 의제와 실무 기반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상태”라고 전했다.
■ “부다페스트 회담 취소 아냐…미국에 달렸다”
앞서 양국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미·러 정상회담을 추진해왔지만 일정이 연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현재 상황상 회담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취소를 시사했지만, 크렘린은 이를 부인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구체적인 날짜가 정해진 적이 없었기에 ‘취소’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며 “회담은 미국이 제안했고, 따라서 향후 일정은 전적으로 미국 측 결정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 “미국 제재는 비우호적 조치…그래도 대화는 필요”
러시아는 미국이 자국 석유 대기업인 **루코일(Lukoil)**과 **로스네프트(Rosneft)**에 추가 제재를 부과한 데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페스코프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는 여러 정치적 뉘앙스가 섞여 있지만, 러시아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면서도 모든 나라와 건설적인 관계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며 “대립보다는 실질 협력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 라브로프 “새 정상회담은 미국이 열쇠 쥐고 있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날 러시아 외무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헝가리 언론 인터뷰에서 “20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했지만, 새로운 정상회담 일정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부다페스트 회담은 미국 측의 제안으로 추진됐고, 러시아는 초청을 수락한 입장”이라며 “따라서 개최 여부는 제안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 “우크라이나 영토,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
라브로프 장관은 또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은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라고 주장했다.
그는 “핵심은 땅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라며 “해당 지역 주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편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022년 이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해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제사회는 이를 불법 점령으로 보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 분석: 정상회담 지연의 정치적 함의
전문가들은 이번 크렘린의 발언을 “트럼프 행정부와의 외교 정상화 신호”로 해석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도 서방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제재 완화 및 경제적 출구를 모색하고 있으며, ‘트럼프 복귀 이후의 외교 지형’을 미리 준비하는 포석으로 본다.
부다페스트 회담이 성사된다면, 이는 양국 관계가 다시 실무 협력 단계로 돌아가는 첫 걸음이 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