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극항로 개척을 국가 차원의 전략 과제로 삼고, 내년 상반기 ‘대통령 직속 북극항로위원회’ 출범을 추진한다. 단순한 항로 확장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현실화된 북극 항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물류 전략의 대전환이다.

■ ‘꿈의 항로’ 북극, 아시아~유럽 잇는 12일 단축 노선

현재 부산항에서 유럽까지의 남방항로(부산~수에즈운하~로테르담)는 약 2만2천km, 평균 34일이 걸린다. 반면 북극항로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북극해를 경유해 유럽으로 향하는 1만4천km로, 약 12일이 단축된다.
이 짧은 거리 차이가 가져올 연료 절감, 인건비 절감, 물류 효율성 개선 효과는 막대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분석에 따르면, 북극항로가 본격 상업화될 경우 2030~2050년 해운비 절감 규모는 연간 30억 달러, 약 4조 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인천·광양항을 거점으로 한 환적 물동량도 최대 15% 증가가 예상된다.

■ 조선·해운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

북극항로 개척은 단순히 항해 노선 확보를 넘어 조선업의 미래 수주 구조에도 직접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글로벌 조선 시장 조사기관에 따르면, 향후 극지 전용선과 쇄빙 LNG선 발주 수요는 연평균 15~20척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될 전망이다.
한국은 이미 쇄빙 LNG선 기술력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며, 실제 수주 점유율이 70~80%에 달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연간 약 50억~70억 달러 규모의 수주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산업 파급력은 HMM,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표 해운·조선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하지만 리스크도 명확하다

북극항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빙해(氷海) 리스크’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다.
남방항로 대비 보험료가 30~50% 높고, 러시아 연안 통과 시 제재 이슈가 발생할 경우 운항비용과 리스크 관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러시아 도선사 탑승, 쇄빙선 이용 등 필수 절차가 제재 대상에 걸리면 운항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글로벌 화주들 사이에서 확산 중인 ‘북극 보호 서약(Arctic Pledge)’ 역시 장벽이다. MSC, DHL, 나이키 등 주요 글로벌 화주는 환경 보호 차원에서 북극항로 이용을 자제하고 있어, HMM과 같은 대형 선사들은 참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 중국·러시아는 이미 움직였다

중국은 ‘빙상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북극항로를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으며, 이미 첫 정기 컨테이너 항로 개척에 성공했다.
미국은 쇄빙선 15척 도입을 추진 중이고, 러시아는 2035년까지 39조 원 투자 계획을 세웠다.
이에 비해 한국은 2017년 HMM의 시험운항 중단 이후, 8년 가까이 본격적인 활동이 없었다.

이번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립은 이러한 **‘공백기 이후의 재도전’**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 “지금이 마지막 기회”…속도전 필요한 시점

해운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선점이 곧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선사가 이미 정기항로를 개설한 상황에서 한국이 늦을수록, 국제 물류 네트워크의 주도권은 점점 멀어진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북극항로 물류 허브화, 친환경 극지선박 기술 개발, 러시아·노르웨이 등 연안국과의 외교적 협력 등이 **‘3대 핵심축’**으로 꼽힌다.

고려대 김인현 교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기업 단위의 상업 운항은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직접 나서 외교·법률·보험 체계를 통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단기 수익성보다 전략 가치’ 강조

정부 관계자는 “북극항로 개척은 단기적인 수익 창출보다는, 기후 변화 이후 세계 물류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전략적 투자”라며 “친환경 해운산업, 극지 기술, 조선 경쟁력 등과 연계한 중장기 로드맵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다시 북극으로 향하려는 이번 시도는 단순한 항해가 아니라,
‘환경·경제·기술’이 맞물린 국가 전략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