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이중 전환(Dual Transformation)’의 한가운데 서 있다.
디지털 혁신과 녹색 전환, 두 축이 동시에 움직이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예고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빛 뒤에는 노동 시장의 ‘공간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 디지털 전환, 분산 대신 집중을 낳다

디지털 기술은 분산형 경제를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가진다.
이론상으로는 원격 근무, 협업 플랫폼, 클라우드 생태계가
지역 격차를 줄이고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유연한 시장을 만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IT, 금융, AI 산업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고임금·고숙련 일자리의 수도권 집중이 지난 10년간 5.8%포인트나 증가했다.
서울의 ‘디지털 타워’가 밝게 빛나는 동안,
지방의 공장 단지는 서서히 불이 꺼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재편이 아니라 노동 시장의 구조적 서열화다.
원격 근무의 확산은 물리적 거리를 줄였지만,
오히려 “근무 가능 지역”을 서울로 더 좁혀버렸다.
기술은 공간의 벽을 허문 대신, 새로운 ‘기회 장벽’을 세운 셈이다.

🌿 녹색 전환, 산업을 살리려다 일자리를 잃다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고탄소 산업 중심 지역은 대대적인 구조 전환에 직면했다.
하지만 녹색 전환은 고용의 재편보다 고용의 축소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제철·화학·에너지 산업 중심 지역에서는
생산설비 축소와 숙련 인력 유출이 동시에 발생하고,
비정형·임시직 중심의 ‘그린 일자리’가 늘어나며
소득과 안정성이 모두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탄소를 줄이면 사람도 줄어든다’는 냉정한 방정식이,
지금 한국의 지방 노동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 청년은 떠나고, 지역은 늙어간다

지식 기반 산업의 수도권 집중은 결국 청년 유출 가속화로 이어진다.
지역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은 서울로, 창업은 판교로,
결혼과 육아는 다시 수도권으로 이어진다.

청년이 빠진 지방의 일자리는
‘저숙련 함정(Low-skill trap)’에 빠지고,
결국 ‘사람이 없는 산업’만 남는다.

🧩 이중 전환 시대, 필요한 것은 ‘삼중 접근’

전문가들은 이제 ‘정책·공간·세대’의 삼중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공동 거버넌스 — 중앙의 전략과 지방의 실행력을 연결해야 한다.
둘째, 공간 연결성 확대 — 데이터센터, 스타트업 허브, 기술 캠퍼스 등을
비수도권에 분산 배치해야 한다.
셋째, 청년 체류 인센티브 — 단순 일자리 지원이 아닌
‘정주·생활 기반 지원’으로 청년이 남을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 체류 기본소득’이나 ‘청년 정착 점수제’ 같은
정책 실험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 결론: 기술이 공평해지려면, 정책이 먼저 공평해야 한다

디지털과 녹색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하지만 그 미래가 수도권 몇 개 도시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의 발전이 사람을 나누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미래’를 잃은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진정한 전환을 원한다면,
이제 ‘누가 혁신을 했는가’보다 ‘누가 함께 일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