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상징이자 선댄스 영화제의 창시자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지 시간 9월 16일, 레드퍼드는 유타주 선댄스의 자택에서 가족 곁에 평온히 영면했다. 생전 그의 대외 창구였던 홍보대행사는 “유가족이 조용한 추모를 원한다”고 전했다.

스크린의 카리스마, 연출의 감각까지 겸비한 ‘두 얼굴의 거장’

1962년 영화 ‘워 헌트’로 스크린 데뷔한 레드퍼드는 ‘내일을 향해 쏴라’(1969)의 선댄스 키드로 대중적 스타덤에 올랐다. 이어 ‘스팅’(1973), ‘위대한 개츠비’(1974),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등으로 1970~80년대 스크린을 호령했다. 배우로 정상에 선 그는 연출로도 재능을 꽃피워, 장편 데뷔작 ‘보통 사람들’(1980)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품었고, 2002년에는 평생공로상까지 받으며 ‘연기와 연출을 모두 정복한 드문 사례’로 기록됐다.

독립영화의 인프라를 만든 사람

레드퍼드는 1981년 선댄스 영화제를 설립해 신인 창작자들이 상업 스튜디오 밖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제도권 플랫폼을 열었다. 그의 이름을 딴 영화제는 훗날 전 세계 독립영화 생태계의 허브로 성장했고, 수많은 감독과 제작자를 산업으로 진입시키는 ‘등용문’ 역할을 했다. 레드퍼드의 유산은 특정 작품을 넘어 제도와 생태계로 확장돼 있다.

사회참여와 환경운동가로서의 얼굴

그는 스크린 밖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알래스카 야생보호구역 개발 반대 등 환경 보호 운동에 앞장섰고, 다큐멘터리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를 통해 공적 이슈에 지속적으로 개입했다. 스타의 명성과 영향력을 공익의 확장에 사용해온 대표적 인물이기도 했다.

황혼에도 멈추지 않은 현역성

마블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2019)에서 알렉산더 피어스로 깜짝 등장해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했고, 최근까지도 드라마 ‘다크 윈즈’ 제작에 참여하는 등 연기와 제작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은퇴와 복귀를 오가면서도 “좋은 이야기”에 대한 집념은 끝내 식지 않았다.


남긴 것들, 그리고 남겨진 질문

레드퍼드는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체현한 한편, 산업의 변곡점마다 새로운 통로를 만든 인물이었다. 고전적 스타 이미지와 현실 감각 있는 제작자의 면모, 그리고 독립영화 생태계를 구축한 설계자의 역할까지—그의 궤적은 ‘한 사람이 산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다.
이제 관객과 동료들은 스크린 속 카리스마, 영화제의 현장, 그리고 그가 심은 수많은 나무와 이야기들을 기억 속에서 다시 소환할 것이다. 로버트 레드퍼드, 한 시대를 빛낸 이름이 조용히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