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대한민국이 일본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올해 극장가에서는 이 역사적 의미와는 다소 어긋난 듯한, 혹은 역설적인 두 작품이 나란히 주목받고 있다.

하나는 일본 인기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다른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핵폭탄 개발을 다룬 **‘오펜하이머’**다. 광복절을 앞두고 이 두 작품이 동시에 화제에 오르면서, 문화 소비와 역사 인식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드러나고 있다.

■ 논란 속 압도적 예매율, ‘귀멸의 칼날’

‘귀멸의 칼날’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2억 부 이상 판매된 메가 히트 만화가 원작이다. 신작 ‘무한성편’은 혈귀와 귀살대의 최종 결전을 그리며, 개봉 전부터 예매율 46.9%로 1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작품 배경이 일본 제국주의 시기의 다이쇼 시대이며, 주인공 귀걸이에 전범기를 연상케 하는 문양이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우익 논란’이 반복돼왔고, 최근에는 한 프로야구 구단의 시구 행사까지 취소시키는 촉발점이 됐다. 광복절 직전이라는 시점이 겹치면서, 흥행과 비판이 동시에 고조되고 있다.


■ 광복절 당일 편성된 ‘오펜하이머’

반대로, 영화 전문 채널 OCN은 광복절 당일 ‘오펜하이머’를 방영한다. 이 작품은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 총책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조명하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장면을 역사적 맥락 속에 담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오펜하이머’가 2023년 한국 개봉일을 의도적으로 8월 15일로 잡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한민국 해방과 원폭 투하의 역사적 연관성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일본에서는 원폭 피해의 민감성 때문에 개봉이 8개월이나 늦춰지며 논란을 불렀다.

■ 문화 소비와 역사 인식의 경계

한 영화계 관계자는 “작품 선택은 개인 취향”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지만, 다른 관계자는 “작품을 작품으로 보더라도, 시기와 맥락에 따라 눈치싸움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사례는 관객이 ‘보고 싶은 콘텐츠’를 선택하는 자유와, 특정 기념일에 적합한 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기대 사이의 간극을 잘 보여준다.

■ 정리

광복절 극장가의 풍경은 단순히 흥행작 목록이 아니라, 대중문화와 역사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귀멸의 칼날’의 폭발적 인기와 ‘오펜하이머’의 상징적 편성은,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할 때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역사적 맥락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