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그의 대규모 이민·국경단속 예산법안을 심의하던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워싱턴이 아닌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의 외딴 구금시설을 찾았다.
이른바 ‘Alligator Alcatraz’라 불리는 이 임시 구금센터는 버려진 활주로를 개조해 만든 곳으로, 주변이 늪지대와 야생 악어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 때문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붙여진 별명이다. 트럼프는 이를 두고 “여긴 나도 등산할 마음이 안 드는 곳”이라며 언론을 대동해 투어를 연출했다.
법안 표결 날 ‘생중계 퍼포먼스’
이날 트럼프의 행보는 그의 법안이 상원에서 표 대결을 벌이던 중요한 순간과 겹쳤다. 정치적으로는 워싱턴을 비워두는 모양새였지만 사실상 이민문제를 그의 대표 브랜드로 부각시키기 위한 무대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언론도 같이 걸으면서 현실을 보라”고 말하며 철망 너머 빼곡히 놓인 2층 침대와 임시 벽을 둘러봤다. 동행한 스티븐 밀러 고문, 크리스티 노엄 국토안보부 장관 대행 등은 기자들에게 “이런 시설이 운영되려면 대통령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약 1750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국경장벽 건설, 이민세관단속국(ICE) 증원, 구금센터 운영비 등에 투입하는 내용이다.
“가장 사악한 범죄자들을 수용할 곳”
트럼프는 현장에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흉포한 불법 이민자들을 수용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끔찍한 범죄 사례들을 상세히 언급하며 공포감을 조성했고, 늪지대의 뱀과 악어를 언급하며 “이곳을 탈출하려면 악어를 피해 달아나야 할 것”이라며 농담 섞인 경고도 했다.
그러나 플로리다 국제대학의 환경학자들은 트럼프의 발언이 과장됐다고 일축했다. “악어는 사람을 사냥하지 않는다. 거의 눌러 밟아야 물릴 정도”라는 전문가 반응도 나왔다.
“광고효과 극대화”…SNS·밈 전쟁
백악관 참모진은 이번 방문을 사실상 미디어 이벤트로 설계했다. 대통령 대변인단은 “Alligator Alcatraz!”라는 문구가 적힌 셀카를 올렸고, AI로 제작한 ICE 모자 쓴 악어들이 랩 음악에 맞춰 춤추는 홍보영상도 배포됐다. 친트럼프 인플루언서들은 현장 방문 인증사진을 SNS에 올리며 “이 감옥에는 굿즈(merch)가 있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트럼프는 현장을 떠나기 전 “이곳은 우리가 사라지고도 수백만 년 동안 악어나 물뱀이 남아 있을 땅”이라며 감상적인 말도 남겼다.
표결 통과 소식에 박수
방문 중 상원에서 법안이 극적으로 통과됐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상원이 동수 표결 끝에 JD 밴스 부통령의 캐스팅 보트로 가결시킨 것이다.
현장에 있던 이민 담당 고위직들과 플로리다 주의회 의원들이 박수를 보냈고, 트럼프는 “내가 여기 와 있다는 게 당신들에 대한 내 관심을 보여준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법안은 상원을 통과했지만, 하원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이번 플로리다 방문은 그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상징적 무대이자, 공화당 내 이민 문제 결속을 강조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