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금(金) 사랑’이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글로벌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인도 가계가 보유한 금 자산의 가치가 약 3조8000억 달러(한화 약 552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미국, 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을 합친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근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가계의 금 보유량은 약 3만4600톤으로, 이는 미국 중앙은행 보유량의 4배 이상이다.
중국 민간의 보유량(약 1만2000톤)보다도 세 배 많다.
세계적으로 봐도 인도는 ‘국가 단위의 금 투자국’을 넘어, 가계 단위의 금 제국으로 자리 잡았다.

■ 금, 인도인의 생활과 문화에 뿌리내린 자산

인도에서 금은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전통과 신앙, 사회적 위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결혼식이나 종교 행사에서는 금 장신구가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며,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세대 간 부의 이전 수단’으로 기능한다.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 우파사나 차크라와바티는 “인도 가계의 막대한 금 보유는 단순한 저축을 넘어선 가계 대차대조표 개선 효과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인도에서는 금이 일종의 비상금 역할을 하며, 현금보다 신뢰받는 ‘생활형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 결혼이 금 수요를 떠받친다

인도에서는 매년 약 1000만 건의 결혼식이 열린다.
결혼 문화가 금 수요를 지탱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신부에게 금을 선물하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 잡으면서, 결혼식 시즌에는 연간 300~400톤의 금이 거래된다.
실제 인도는 지난해 세계 최대 금 장신구 소비국(560톤)으로 기록됐으며, 금괴 구매량도 240톤에 달했다.

하지만 인도는 엄격한 채굴 규제로 인해 연간 금 생산량이 1톤에 불과하다.
결국 수요의 대부분인 700톤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금값 상승은 곧바로 인도 무역수지 부담으로 이어진다.

■ “주식보다 금” … 가계 자산의 15% 차지

인도 가계의 자산 구성에서도 금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주식이 전체 자산의 6%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금은 약 15%를 차지한다.
이러한 금 선호는 금융 불확실성과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방어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몇 년 새 금 담보 대출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인도 내 금 담보 대출 건수는 불과 8개월 만에 68% 증가했다.
대형 금융사에서는 금을 맡기면 15분 이내에 대출 승인이 가능할 정도로 절차가 간소화됐다.
이는 금값 상승이 가계의 실질 담보가치와 소비 여력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 금값 상승, 인도 경제에 양면효과

금값 상승은 인도 가계에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주지만, 동시에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인도 경제에는 양날의 검이다.
금 수입이 늘면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루피화 약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도 정부는 금 수입 관세를 조정하거나, **금 재활용 산업(리사이클링)**을 육성해 공급망 안정을 꾀하고 있다.

■ “금의 나라는 여전히 빛난다”

전문가들은 “금은 인도인의 신앙이자 자산 구조의 근간”이라며 “가격이 올라도 소비는 줄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이는 인도가 단순히 금을 ‘사치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 속에서도 가치가 보존되는 ‘생존형 자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도의 금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시장이 흔들릴수록, 인도 가계의 금고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다.
금은 여전히 인도인의 마음속에서 통화·보험·전통의 상징으로 빛나고 있다.

금값이 뛰면 전 세계 투자자들은 긴장하지만, 인도만큼은 다르다.
그들에게 금은 통화의 대체재이자 신앙의 일부다.
이 거대한 ‘황금 경제’가 인도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