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물리학상이 ‘거시적 양자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연구는 양자역학이 원자 수준을 넘어 인간이 직접 다룰 수 있는 전자회로에서도 작동함을 보여주며, 양자컴퓨터 시대의 물꼬를 튼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 초전도 회로에서 양자터널링 실험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7일(현지시간) 발표한 202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존 클라크(UC버클리 명예교수), 미셸 드보레(예일대 명예교수·구글 퀀텀AI 수석과학자), 존 마티니스(UC산타바버라 교수·양자 스타트업 콜랩 CTO) 등 세 명이다.
위원회는 “이들이 거시적 크기의 전기회로에서 양자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를 관찰함으로써, 양자역학의 경계를 다시 정의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세 과학자는 1980년대 초반 초전도체로 만든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 실험을 통해 전자가 장벽을 통과하는 ‘양자터널링’과 전기 에너지가 일정한 양자 단위로만 변하는 ‘양자화’ 현상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수천억 개의 전자가 얽혀 움직이는 초전도 회로가 하나의 거대한 양자입자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 양자컴퓨터의 시작점 된 연구
이 연구는 오늘날 초전도 큐비트(Quantum Bit) 기술의 뿌리가 됐다. 큐비트는 양자컴퓨터의 최소 단위로,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양자역학적 성질을 지닌다.
위원회는 “이들의 발견은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양자센서 등 차세대 기술 발전의 핵심 기반을 마련했다”며 “정보기술의 미래를 재정의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올레 에릭손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양자역학은 100년이 넘는 이론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며 “이번 발견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가했다.
■ 수상자들의 발자취
존 클라크 교수(UC버클리):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초전도 양자회로 연구의 선구자. “우리의 연구가 양자컴퓨팅의 근간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휴대전화가 작동하는 근본 원리 중 하나 역시 이 발견에서 비롯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셸 드보레 교수(예일대):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구글 퀀텀 AI 프로젝트의 최고과학자로 활동 중이다.
존 마티니스 교수(UC산타바버라): 2014년 구글에 합류해 ‘시커모어(Sycamore)’ 양자컴퓨터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며, 현재는 스타트업 ‘콜랩(Qolab)’ 공동창업자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 한국 학계 “양자역학의 제2세기 열었다”
성균관대 정연욱 교수는 “전자들이 에너지 장벽을 넘어간다는, 불가능해 보이던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한 획기적인 결과”라며 “거시적 회로에서도 양자상태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현대 양자칩 설계의 기초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상이 “양자역학의 제2세기(Second Quantum Century)”를 여는 신호탄이라고 분석한다.
최근 3년간의 노벨물리학상이 모두 양자물리학의 실험적 검증에 집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2년에는 ‘양자얽힘(Entanglement)’ 실험, 2023년에는 ‘초단펄스 레이저로 전자 움직임 관측’이 선정됐으며, 올해는 거시적 양자터널링이 그 흐름을 이었다.
■ 상금과 향후 일정
세 수상자는 총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6억4000만원) 를 균등하게 나눈다.
노벨위원회는 앞서 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표를 마쳤으며, 이어 화학상(8일), 문학상(9일), 평화상(10일), 경제학상(13일) 수상자를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