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공동 CEO(공동대표)’ 체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창업주의 퇴진 이후 조직 안정과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한 새로운 리더십 모델로 주목받고 있지만, 권한 충돌과 책임 불분명이라는 구조적 한계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 창업자 퇴진 이후 떠오른 ‘투톱 경영’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창업자 시대를 마감하며 경영의 무게중심을 ‘공동 CEO 체제’로 옮기고 있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소프트웨어, 통신 등 산업을 막론하고 두 명의 최고경영자가 각자의 전문 분야를 맡아 회사를 이끄는 형태다.
특히 창업주가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며 기술 담당 임원과 사업 전략 책임자가 나란히 대표 자리에 오르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시장 조사 결과, 올해 들어 러셀3000 지수에 포함된 기업 중 30여 곳이 공동 CEO 체제를 운영 중이며, 그중 3분의 2는 창업자 직계 혹은 후계자가 포함된 사례로 나타났다.
■ “하나보다 둘”…위험 분산과 인재 유지 효과
전문가들은 공동 CEO 체제가 ‘리스크 분산형 거버넌스’로 기능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 명의 최고경영자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고, 조직 내 핵심 인재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예를 들어 한 명의 내부 후보만을 승진시킬 경우 경쟁에서 밀린 다른 리더가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높지만, 공동 승진 구조는 이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비상 상황 시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 글로벌 IT 기업 중 일부는 공동 CEO 중 한 명이 건강 문제로 물러난 이후, 다른 CEO가 자연스럽게 단독 체제로 회사를 안정시킨 사례도 있다.
■ 성공 요건은 ‘명확한 역할 분리’
공동 CEO 체제가 성공하려면 역할과 책임의 경계가 뚜렷해야 한다.
제품·기술·영업 등 기능 단위로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내부 정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거버넌스 전문가들은 “각 CEO의 전문 분야가 명확히 나뉘고, 최종 결재권의 기준이 합의된 상태여야만 공동 체제가 지속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사모펀드, 콘텐츠 플랫폼 등 일부 기업은 기술과 투자, 경영과 운영을 명확히 분리한 덕분에 수년째 안정적인 공동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역할이 겹치는 기업들은 불과 2~3년 만에 단독 CEO 체제로 회귀한 경우가 많다.
■ 권력 분점의 그림자
그러나 공동 CEO 체제는 ‘권력 다툼’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의사결정이 분산되면 외부 시장에는 이중 메시지가 전달되고, 내부 임원단도 진영화될 수 있다.
실제 글로벌 테크 기업 일부는 공동 CEO 간 전략 갈등으로 조직 효율이 떨어지자 결국 단독 체제로 전환했다.
통계적으로도 공동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은 단독 CEO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주주 수익률은 긍정적…그러나 장기적 검증 필요
일부 연구에서는 공동 CEO 체제를 운영하는 기업의 주주 수익률이 단독 CEO 기업보다 높았다는 결과도 있다.
하버드 경영대 연구에 따르면 공동 CEO를 둔 기업의 평균 연간 주주 수익률은 약 9%로, 비교 그룹(6~7%)보다 높았다.
이는 ‘역량을 공유하는 리더십 구조’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기 수익률보다 장기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 새로운 리더십 실험의 시사점
공동 CEO 제도는 단순한 권한 분배가 아니라 조직 리더십의 재설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혁신과 안정, 기술과 경영이라는 서로 다른 축을 동시에 잡기 위해 기업들이 택한 실험이지만, 성공의 열쇠는 결국 ‘역할의 명확성’과 ‘신뢰 기반 협력’에 있다.
결국 공동 CEO는 두 배의 리더십을 얻는 구조가 아니라, 두 배의 조율 능력을 요구하는 리더십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