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고대역폭 메모리(HBM) 장비 사업에 속도를 올리며 반도체 후공정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이 양분하던 본딩 장비 경쟁 구도에 LG전자가 뛰어들면서, 국내외 업체 간 치열한 ‘HBM 패권 다툼’이 예상된다.

◇ 하이브리드 본더 직행 전략

LG전자는 최근 반도체 패키징 핵심인 하이브리드 본더 연구개발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기존 열압착(TC) 본더보다 발전된 장비로, D램 적층 시 범프 단자가 필요 없어 전력 효율과 속도, 집적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6세대 HBM(HBM4), SK하이닉스가 7세대(HBM4E)부터 본격 적용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맞춰 LG전자는 2028년까지 양산 검증(POC)을 마치고, 2030년부터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목표다.

◇ TV·가전 의존 줄이고 B2B로

LG전자가 반도체 장비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TV·가전 등 B2C 사업은 성장이 정체된 반면, B2B 기반 반도체·AI 인프라 사업은 수익성이 높고 장기적 성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주완 LG전자 CEO는 “차세대 HBM 생산을 위한 필수 기술 확보에 집중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정 전반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 한미·한화·글로벌 강자와 정면승부

하지만 LG전자가 넘어야 할 벽도 만만치 않다. TC 본더 시장은 한미반도체가 점유율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고,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와 손잡고 2세대 하이브리드 본더 출시를 예고했다. 네덜란드 BESI, 싱가포르 ASMPT 등 글로벌 강자들까지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경쟁 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0년간 축적한 장비 R&D 경험과 후공정 업체 공급 이력을 기반으로 차별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특히 HVAC 냉난방 시스템과 스마트팩토리 자동화 역량을 반도체 장비와 묶어 ‘원스톱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쟁사 대비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 시장 성장성과 전망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자료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시장은 2025년 약 2억 달러 규모에서 2034년 약 7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15%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만큼, LG전자가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구축한다면 반도체 장비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