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가뭄 해결을 위한 ‘인공강우(Cloud Seeding)’ 기술이, 이번엔 대규모 홍수의 ‘주범’으로 몰렸다.

미국 텍사스에서 7월 초 기록적인 폭우로 100명 넘게 숨지거나 실종된 참사가 발생하자, 일부 정치인과 유명인사, SNS 인플루언서들이 “이게 클라우드 시딩 탓 아니냐”는 주장을 쏟아냈다.

과학계는 즉각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피해와 공포가 클수록 이런 음모론은 더 빠르게 번지고 있다.

“우리 때문에 홍수 났다고?” 벤처기업 ‘Rainmaker’의 곤혹

논란의 중심에는 2023년에 창업한 캘리포니아 스타트업 **‘Rainmaker’**가 있다.
이 회사는 텍사스 지역 농업용 저수지 수량을 늘리기 위해 올 7월 2일, 비행기를 띄워 70그램의 은 요오드(Silver Iodide)를 구름에 살포했다. 이 작업으로 해당 지역에는 약 0.5mm 정도의 미미한 비가 내렸다고 한다.

문제는 며칠 뒤, 전혀 다른 지역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열대성 폭풍의 영향으로 15인치(약 38cm) 넘는 비가 Kerr County 등에 퍼부은 것이다. 이 참사 이후, SNS에서는 Rainmaker의 클라우드 시딩 계약서 이미지가 떠돌았고, “인재(人災)”라는 주장이 급속히 확산됐다.

음모론을 증폭시킨 유명 정치인들

공화당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SNS에서 기후조작 범죄화를 추진하겠다며 법안 도입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들의 게시글은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SNS에서 논란을 키웠다.

틱톡 등에는 Rainmaker 대표가 한 팟캐스트에서 “만약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나”라는 질문을 받는 장면이 편집돼 홍수 피해 영상과 섞여 퍼지기도 했다.

“구름씨 뿌린다고 홍수 만들 수 있나?” 과학계의 반박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전면 부정한다.
일리노이대 대기과학 명예교수 밥 라우버는 “클라우드 시딩으로 조정 가능한 비의 양은 자연이 가진 에너지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Rainmaker가 살포한 은 요오드 양은 겨우 70g. 실험적으로도 겨울철 구름에서 수 mm의 눈을 추가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입증된 수준이다.

또 클라우드 시딩이 가능하다고 해도 효과는 살포 지역과 구름 조건에 따라 국지적·일시적이다. 텍사스 홍수가 발생한 지역과 시딩이 이루어진 지역은 160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왜 이런 주장이 먹히나”

기후위기로 인해 폭우와 가뭄이 잦아진 시대에 사람들은 비극의 원인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케미트레일(비행기가 독극물을 살포한다는 음모론)' 등 기상 조작설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확산된 백신 음모론, 바이오무기설 등과 비슷한 패턴으로, 대중의 불신과 불안이 음모론을 부추긴다.

버펄로대학 환경지속가능학 교수인 홀리 벅은 “혼란스러운 정보 환경에서 이런 주장은 사람들에게 ‘간단한 해답’을 준다”며 경계했다.

사실상 모든 나라가 관심 가지는 기술

흥미로운 건 클라우드 시딩 자체는 전세계가 관심을 두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미국 회계감사원(GAO)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39개국이 클라우드 시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중국은 2014년 이후 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2022년에만 2억5000만 달러를 썼다.
미국 서부의 9개 주도 극심한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연간 수천만 달러를 투입한다.

단, 미국 연방정부의 대규모 실험은 1980년대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1940~60년대에는 군사적 목적으로도 연구가 진행됐으나, 베트남전의 ‘팝아이 작전’ 폭로 이후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비는 인간이 부르는가, 자연의 분노인가”

Rainmaker 대표 도리코는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이런 비난을 받을 거라 예상했다”고 털어놨다.
“자연재해는 원래 예측 불가능하고 잔인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 한다.”

그는 클라우드 시딩 기술에 대한 규제와 투명성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무책임한 음모론이 온라인에서 확산되는 것에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결국 이 사건은 기술적 쟁점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정보와 책임'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드러낸다.
과학적 근거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의혹이 더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환경이야말로 앞으로 풀어야 할 큰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