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퇴직제도 개편 방향이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또 다른 생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퇴직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고, 퇴직연금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물가와 인건비 인상으로 이미 한계에 도달한 소상공인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퇴직금, 1년 아닌 ‘3개월’만 일해도 받는다?

정부는 현재 1년 이상 근속해야 지급되는 퇴직금 제도를 3개월 이상 근무자에게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방안이 도입될 경우, 단기간 근로한 아르바이트생이나 비정규직 직원에게도 퇴직금이 발생하게 된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A씨는 “지금도 아르바이트 인건비 부담이 커서 교대시간을 촘촘히 나누고 있는데, 퇴직금을 생각하면 3개월 이상 고용을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는 장기근속 유인보다는 단기 계약으로의 회귀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퇴직연금 의무화…5인 미만 사업장도 예외 아냐

현재 정부는 퇴직금 대신 퇴직연금 중심으로 제도를 개편하려 하고 있으며,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계획이다.
규모에 따라 ▲300인 이상 ▲100299인 ▲3099인 ▲5~29인 ▲5인 미만 등 5단계로 나눠 적용되며, 최종적으로는 영세 자영업자도 퇴직연금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은 거세다. 서울 중구에서 도소매업을 운영 중인 이모(65) 씨는 “매출은 줄고 있는데, 퇴직연금 납입까지 강제되면 사업 유지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월급도 빠듯한 상황에서 매달 퇴직연금 비용을 별도로 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

소상공인 연쇄 폐업 현실화되나

이미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임대료, 국민연금 보험료 상승에 이자 부담까지 더해진 ‘사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외부감사 대상 법인 중 40%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결과, 지난해에만 98만 명이 자영업 폐업을 신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퇴직연금과 퇴직금 의무가 더해진다면 폐업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확산되고 있다.

실효성 논란도…“지원 없는 제도 확대는 공허”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적 시선을 보낸다.
이봉주 경희대 명예교수는 “퇴직연금 의무화는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됐지만,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사업장은 실행이 어려웠다”며 “정책 도입 이전에 소상공인에 대한 충분한 재정적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률은 300인 이상 사업장이 70.2%에 달한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은 겨우 11.8% 수준에 불과하다.

‘선의의 정책’이 낳는 또 하나의 위기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를 위한 안전망이지만, 실행의 무게가 고스란히 소상공인에게 전가된다면 그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서울의 한 식당 운영자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며 포기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다”며 “지원 없이 부담만 강요되는 정책은 결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복지 확대와 고용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제도의 단계적 적용과 함께 실질적인 지원 방안 마련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