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도입이 속도를 내면서 그동안 우려로만 거론되던 ‘AI발 대량 구조조정’이 현실에서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해외 빅테크는 물론 국내 통신·게임사까지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고임금·고학력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정면 충격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 “직원 30% 줄인다” 중국 빅테크, AI 중심으로 몸집 재편
중국의 대표 인터넷 기업 가운데 하나인 바이두는 연말을 앞두고 대규모 감원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바이두는 전체 인력의 약 30%를 줄이는 방안을 내부에 통보했다.
회사 측은 근속연수에 비례한 법정 퇴직 보상금에 추가 급여 3개월 이상을 얹는 조건을 제시하며, 형식상 ‘합의 퇴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구조조정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AI를 중심에 둔 인력 구조 재편이 본격화된 신호”라고 해석한다. AI가 기존 서비스·업무 프로세스를 재구성하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인력 규모를 유지할 명분이 줄었다는 것이다.
■ MS, 9천 명 정리…역사상 최대급 구조조정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도 예외는 아니다. MS는 최근 9,000명 수준의 인력을 정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인력감축이다.
MS는 클라우드, 생성형 AI, 생산성 솔루션 등 핵심 사업에는 투자를 늘리는 대신, 기존 사업부와 중복·효율성이 떨어지는 조직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인력 구성을 손질하고 있다. AI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렬하면서, 사람 대신 알고리즘과 자동화 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 판교·통신·게임업계까지 번진 ‘희망퇴직’ 러시
해외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이미 ICT·통신·게임 업계 전반에 희망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KT는 대규모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해 약 2,800명이 회사를 떠났다.
LG유플러스도 파격적인 위로금 조건을 내걸고 약 600명 수준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역시 조직 슬림화 차원에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국내 대표 게임사인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등을 통해 약 900명이 회사를 떠났고, 이 과정에서 본사 인력이 3,000명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에서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술 발전과 경기 둔화가 맞물리면서, 많은 회사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 본격적인 인력 구조조정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자조 섞인 분위기다.
■ “AI가 웬만한 직원보다 싸고 빠르다”…화이트칼라 직군, 정면 타격
이번 흐름의 핵심에는 AI의 생산성이 있다. 생산 현장뿐 아니라
문서 작성, 고객 응대, 데이터 정리, 단순 코딩·테스트
와 같은 사무·전문직 업무 상당 부분이 AI와 자동화 도구로 대체 가능해지면서, 고학력·고임금 화이트칼라 직군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계가 단순 노동을 대체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면, 지금은 ‘AI가 사무직·전문직의 일부를 직접 대체한다’는 시대가 된 것”이라며
“특히 인건비 비중이 높은 정보통신·플랫폼 기업 입장에선 AI 도입이 곧 인력 구조조정 논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전 세계 기업 66% “앞으로 3년, 초급 채용 줄이겠다”
AI가 채용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시장조사기관 IDC가 한국을 포함한 22개국 기업 리더를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66%가 향후 3년 동안 초급 인력(신입·주니어) 채용을 줄일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 기업의 91%는 이미 회사 내부에서 AI로 인해 직무 내용이 바뀌었거나,
특정 역할이 대체·축소되는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한국 기업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국내 응답자 가운데 61%* “앞으로 초급 인력 채용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혀, AI로 인한 구조조정·채용 축소 압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 “AI 시대, 일자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구조’가 갈린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량 해고·희망퇴직 사례들을 “AI 전환기 초입에 나타나는 구조조정의 서막”이라고 평가한다.
AI 도입으로 인해
단순·반복 업무, 매뉴얼형 사무직, 데이터 정리·보고서 작성 중심 직무는 빠르게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AI를 설계·운영·검증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며,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는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노동시장 전문가는
“AI 때문에 일자리가 ‘통째로’ 사라진다기보다, 어떤 일자리는 급속히 줄고 다른 유형의 일자리는 새로 생기는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라며
“개인 입장에서는 기존 직무를 지키겠다는 생각보다,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역량을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가 생존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효율성이 누군가에겐 비용 절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일자리 상실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만든 새로운 일자리 구조 속에서 어디에 설 것인지를 지금부터 대비하는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