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달러당 1,460원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농축수산물, 석유류, 가공식품 가격이 동시에 뛰며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비축물량 방출과 할당관세 확대 등 대응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 한 물가 관리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 11월 소비자물가 2.4% 상승…가장 크게 오른 건 먹거리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 상승했다. 수치만 보면 비교적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 항목을 보면 사정은 다르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5.6% 올랐고, 특히 일부 품목은 급등세를 보였다.

· 귤 26.5% 상승

· 사과 21.0% 상승

· 쌀 18.6% 상승

농축수산물 가격 급등은 전체 소비자물가를 약 0.42%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와 정부는 원화 약세로 인해 수입 과일·축산품 가격에 부담이 커진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 국제유가는 내렸는데…주유소 휘발유값은 오히려 상승

석유류 가격도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1월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5.9% 올랐다.

하지만 국제유가는 같은 기간 오히려 내려갔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올해 초 배럴당 79달러 수준에서 최근 6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국내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1,700원대를 넘어서며 지속 상승 중이다.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정유사 정제마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분이 국내 판매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 가공식품도 연쇄 인상…생활물가지수 1년 4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

가공식품 가격 역시 3.3% 올라 서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라면, 과자, 음료 등 상당수 품목의 원재료가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향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들이 체감하기 쉬운 생활물가지수는 11월에 2.9%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 정부, 9,500억 원 규모 할당관세…“먹거리·에너지 두 축 집중 관리”

정부는 가격 부담이 큰 항목을 중심으로 대책을 집중하고 있다.
우선 농축수산물 비축 물량을 추가로 방출해 공급을 늘리고, 수확기 쌀 시장 안정 대책도 보완할 계획이다.

또한 수입 비용을 낮추기 위해 내년 커피 생두·설탕·해바라기씨유·냉동 과일류·LNG·LPG 등에 총 9,528억 원 규모의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일정 기간 관세를 최대 40%까지 낮춰 수입단가 자체를 낮추는 방식이다.

정유사 정제마진 점검도 본격화한다. 국제유가 하락 기조에도 국내 휘발유 가격이 오른 만큼, 정유업계의 이익 구조가 과도하게 확대된 것인지 정부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의미다.

■ “환율 안정이 물가 안정의 전제 조건”…정부도 인정

정부는 국무회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물가 관리는 민생의 핵심”이라며 대응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변수는 환율이라는 점은 정부도 부인하지 않는다.

한 고위 관계자는 “물가·금리·환율 중 현재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환율”이라며 “시장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향후 물가 하락 요인을 묻는 질의에 즉답을 피하며, 환율 불안이 물가 안정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 장바구니·주유소 가격, 당분간 환율 따라 움직일 듯

전문가들은 단기 대책만으로는 상승 압력을 완전히 꺾기 어렵다고 본다.

식량·에너지·원자재 등 주요 품목을 해외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서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시간이 지나면서 대다수 품목 가격이 넓게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소비자 물가는 환율 흐름과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크며, 정부가 가격 안정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환율 안정·수입 구조 개선·공급망 다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