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제8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END(Exchange·Normalization·Denuclearization) 이니셔티브’를 새 한반도 평화 구상으로 제시했다. 남북 간 교류 확대(E), 관계 정상화(N), 단계적 비핵화(D)를 축으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끝낸다(END)’는 비전을 제도화하겠다는 메시지다.

대통령은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며, 상호 체제 존중과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의사 부재를 분명히 했다. 취임 직후 대북 전단·확성기 방송 중단 등 긴장 완화 조치를 선제 이행했다고 밝히며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의 길을 일관되게 모색하겠다”고 했다. 북미 대화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지지하겠다고 덧붙였다.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선 ‘중단→축소→폐기’로 이어지는 실용적·단계적 해법을 국제사회와 모색하자고 촉구했다. 우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을 출발점으로, 검증 가능한 ‘축소’를 거쳐 최종 ‘폐기’로 나아가는 방식을 거론했다.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말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흔들었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국민의 저력으로 극복했다”며 “민주 대한민국의 완전한 국제사회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빛의 혁명’이라는 표현으로 시민사회의 저항을 평가하고, 문학작품 인용을 통해 “대한민국이 자유·평화의 이정표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다자주의 강화 의지 역시 전면에 내세웠다.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한 ‘유엔80 이니셔티브’에 기대를 표하며, 변화한 국제환경을 반영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확대 등 대표성과 효율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국내에 거주하는 내·외국인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 중심 국가’ 비전을 재확인했다.

신안보 의제로는 AI와 기후를 동시에 올렸다. 대통령은 “AI는 국방·사이버 역량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장”이라며 책임 있는 사용 원칙을 국제사회가 함께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APEC AI 이니셔티브’ 비전을 공유하겠다고 예고했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에 대해선 과학기술·디지털 혁신을 기반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겠다며, 연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제출 계획을 밝혔다. 2028년 칠레와 공동 주최하는 제4차 유엔 해양총회에서 지속가능한 해양 연대를 구축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글로벌 개발 거버넌스에 대해선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을 위해 개발금융의 구조적 개혁과 재원 ‘질(quality)’ 제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도약한 한국의 경험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 의장을 맡아 AI의 책임 있는 이용 촉진을 의제로 논의할 계획이다. 그는 “국경과 언어를 넘어선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새 시대, ‘함께하는 더 나은 미래(Better Together)’를 향해 대한민국이 앞장서겠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