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자사의 인공지능 전략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자체 개발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외부 AI 기업들의 첨단 언어모델을 적극 도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업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애플은 현재 자사 음성비서인 **‘시리(Siri)’**의 기능을 대폭 개선하기 위해 오픈AI, 앤트로픽(Anthropic) 등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특히 두 기업이 제공하는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애플의 클라우드 인프라 위에서 맞춤형으로 학습·운영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가 시리 개선에 특히 적합하다는 평가가 내부적으로 나오면서 협상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사용료 규모가 연간 수십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격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 모델 활용 방안도 여전히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그동안 애플은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 AI 처리 역시 기기 내(on-device) 방식과 자사 클라우드 인프라 중심으로 구현해왔다. 이번 협상에서도 핵심 조건은 같다. 외부 업체의 AI 모델이라도 사용자 데이터가 외부 서버로 전송되지 않도록,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클라우드 환경에서만 작동하도록 설계한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이번 논의는 애플의 AI 전략에 분명한 균열을 드러낸다. ‘시리’는 음성인식 시장의 선구자였지만, 최근 급격한 생성형 AI 경쟁에서 존재감이 크게 희미해졌다. 차세대 시리 론칭 일정은 수차례 연기돼, 당초 2024년 가을로 계획됐던 신기능 출시가 2026년 이후로 밀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애플 내부에서도 기존 전략을 둘러싼 긴장이 감지된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애플 내 AI 부문을 총괄했던 존 지안안드레아 부사장은 이번 시리 개편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크레이그 페더리기와 시리 책임자 마이크 록웰이 외부 모델 평가와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이 외부 기술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단기적인 돌파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내부에서도 자사 언어모델이 경쟁사 대비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 조짐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여전히 중장기적으로는 자체 AI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자사 클라우드 인프라를 통한 AI 학습과 서비스를 위해 이미 2026년까지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승인한 상태다. 그러나 그 이후의 로드맵은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투자자들의 시선도 엇갈린다. 애플 주가는 최근 반독점 소송 관련 불확실성으로 하락세를 보였지만, 오픈AI·앤트로픽과의 협업 가능성이 부각되자 하루 만에 약 2% 가까이 반등했다.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애플의 결연함이 시장에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 셈이다.

애플의 차세대 AI 전략이 ‘완전한 독자 개발’에서 ‘하이브리드 협력 모델’로 전환할지, 아니면 일부 분야에 국한된 임시 해법으로 남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리와 애플 AI의 향후 진화가 더 이상 애플만의 일이 아니라 글로벌 AI 생태계 전반의 경쟁 구도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