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돈의 이동 속도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 부근까지 치솟자, 은행에 머물던 대기성 자금이 주식과 ETF, 증권사 계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른바 ‘머니무브’가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 흐름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불장이 만든 풍경…예금은 빠지고, 투자 대기자금은 쌓인다
주가가 급등하자 투자자들의 행동은 분명해졌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시입출금 통장보다는, 언제든 주식에 투입할 수 있는 증권사 예탁금과 CMA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실제로 투자 대기성 자금 규모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장의 열기를 보여준다.
반면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졌다. 요구불예금은 은행의 핵심 수신 기반인데, 이 자금이 빠져나가면 대출 여력과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응 전략은 ‘속도 조절’
은행권이 선택한 카드는 의외로 공격적이다.
✔ 고금리 파킹통장
✔ 플랫폼 연계 특판 통장
✔ 단기 고금리 적금
겉으로 보면 “은행이 금리 경쟁에 다시 뛰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방어 전략에 가깝다. 고금리를 제시하되 한도를 제한하고, 조건을 붙여 순이자마진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즉, 고객 자금을 오래 붙잡아 두기보다는
👉 “증권사로 완전히 넘어가기 전, 잠시 머물게 하는 완충지대”를 만드는 전략이다.
▲연 20% 적금의 실체…마케팅인가, 위기 신호인가
최근 등장한 연 10~20%대 적금 상품은 숫자만 보면 파격적이다. 하지만 구조를 들여다보면
·짧은 만기
·낮은 납입 한도
·특정 조건 충족 시에만 적용
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은행권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불장 국면에서 예금 이탈 속도를 늦추기 위한 ‘시간 벌기용 상품’ 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기예금 금리도 다시 꿈틀…배경은 조달 비용
흥미로운 점은 정기예금 금리 역시 다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경쟁이 아니라
·은행채 금리 상승
·증권사 고수익 상품과의 경쟁
·자금 조달 환경 변화
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일부 은행이 3%대 정기예금을 다시 꺼내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돈은 움직이고, 은행은 쫓는다
이번 흐름은 단기 이벤트라기보다 자금 운용 패러다임 변화에 가깝다.
과거에는 “은행 → 부동산”이 주된 이동 경로였다면, 지금은 “은행 → 증권시장”이 훨씬 빠르고 직접적이다.
은행들은 고금리라는 당근으로 속도를 늦추려 하지만, 시장의 방향 자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불장이 이어지는 한, 자금 이동을 둘러싼 은행과 자본시장의 줄다리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