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문제는 병 그 자체보다, 치매 이후의 삶을 지탱할 제도가 준비돼 있느냐에 있다. 특히 자산을 보유한 치매 환자들에게는 역설적인 공백이 존재한다. 돈은 있지만,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재산이 많을수록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
현행 제도는 치매로 판단 능력을 상실하면 금융과 재산 관리 전반을 사실상 멈춰 세운다. 계좌 인출, 부동산 관리, 보험·금융 계약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지출조차 제약을 받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체 관리 주체’가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층 노인의 경우 행정 개입의 명분이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나 중산층이나 자산가 노인은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공적 지원의 문턱에서 배제된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도움을 받을 제도적 통로도 없는 상태다.
▲방치되는 ‘치매머니’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이른바 ‘치매머니’다. 사용 주체가 사라진 자산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기능을 잃는다. 관리되지 않는 주택은 노후화되고, 금융자산은 묶인 채 생활비로 전환되지 못한다. 정작 당사자는 기본적인 돌봄조차 받지 못한 채 고립된다.
이 현상은 단순한 개인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 비효율의 집합이다. 자산은 있으나 활용되지 못하고, 공공 시스템은 개입하지 못하며, 지역사회는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도 손을 쓰기 어렵다.
▲가족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가족이 존재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후견 제도가 있더라도 실제 선택은 비용 부담이 적은 최소 서비스로 기울기 쉽다. 장기적인 삶의 질보다는 단기 비용이 우선되는 구조다. 전통적인 가족 돌봄이 약화된 현실에서,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고령 1인가구 시대, 제도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고령 1인가구는 계속 늘고 있고, 치매 발병률 역시 고령일수록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관리 체계는 ‘신청하는 사람’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판단 능력을 상실한 이들이 스스로 문을 두드릴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구조다.
전문가들은 치매 관리가 이제 의료 차원을 넘어 재산·돌봄·지역 연계까지 포괄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센터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찾아가는 관리와 사전 설계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설계’가 필요하다
치매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대비는 가능하다. 신탁, 후견인 지정, 자산 관리 계획은 더 이상 부유층의 선택지가 아니라 고령 사회의 기본 안전장치가 되고 있다. 개인의 준비와 함께, 국가 차원의 제도 정비 역시 병행돼야 한다.
치매는 기억을 앗아가지만, 제도의 부재는 존엄을 빼앗는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둔 준비를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