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이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산업 현장 안팎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오히려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이 이미 뒤처진 상황이라는 진단까지 나온다. 이제 경쟁의 축은 인건비나 생산량이 아닌, AI를 얼마나 깊이 제조 공정에 녹여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산업 정책을 이끄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AI 전환에 실패한 제조업은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술 격차’가 아닌 ‘시스템 격차’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값싼 노동력에 기대지 않는다. 생산 설비 전반이 데이터 기반으로 연결되고, 주문부터 생산까지의 흐름이 자동화된 구조 자체가 경쟁력이다. 이 구조에서는 재고도, 대기 시간도 최소화된다.
문제는 단순히 한두 개의 스마트 공장을 따라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과제는 개별 기업의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전환 속도와 구조적 결단에 가깝다.
▲AI는 선택이 아닌 ‘산업 생존 조건’
AI는 더 이상 IT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동차, 조선, 배터리, 기계, 로봇 등 전통 제조업 전반이 AI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제조 데이터는 이미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영역이다. 그러나 이 데이터를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는 AI 모델과 실증 환경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데이터 보유국이 아니라 AI 활용국이 주도권을 쥐는 구조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
▲정부·기업·연구기관의 ‘연결’이 관건
최근 주목되는 정책 방향은 개별 지원이 아니라 연합 구조다.
대기업, 중소기업, 대학, 연구소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제조 데이터를 공유하고 AI 실증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기간 성과보다는, 제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전략에 가깝다.
성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AI 시대의 또 다른 변수, ‘전력’
AI 공장은 전기를 먹고 자란다.
데이터센터, 고성능 반도체, 24시간 자동화 설비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정책 역시 제조·AI 전략과 분리할 수 없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원만으로는 AI 기반 산업을 떠받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힘을 얻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살아남는 전략
글로벌 질서는 단순한 양자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 에너지, 통상, 안보가 복잡하게 얽힌 환경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유연한 다자 협력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산업별·기술별로 협력 지점을 정교하게 조정하는 현실적 외교·통상 전략이 요구된다.
▲지금이 ‘결정의 시간’
한국 제조업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과거의 방식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산업 패권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향후 10년, 한국 제조업의 위치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속도와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