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용시장이 뚜렷한 성장 둔화를 보이는 가운데, 기업들은 정작 필요한 인재를 찾지 못하는 극심한 미스매칭에 시달리고 있다. 전체 일자리 수는 사실상 정체됐지만, AI·클라우드·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에서는 중·고급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 ‘일자리는 있으나 사람이 없다’…정체된 고용시장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일자리는 약 2671만 개로 집계됐다. 숫자만 보면 여전히 큰 규모지만, 증가한 일자리는 고작 6만 개.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증가 폭이다.
특히 건설업·금융업·운송업 같은 전통 산업에서만 18만 개 넘는 일자리가 사라지며 구조적 위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20대 청년층이 체감하는 고용 축소도 현실로 드러난다. 해당 세대의 일자리는 2년 연속 감소해 15만 개나 줄어들었다. 인구 감소와 기업의 신규 채용 축소가 겹친 결과다.
■ 반대로 신기술 분야는 ‘구인전쟁’…5년 내 58만 명 부족
아이러니하게도 산업계는 여전히 “사람이 없다”고 호소한다.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2029년까지 AI·클라우드·빅데이터 등 차세대 기술 영역에서 필요한 중·고급 인력은 최소 58만 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AI 투자 규모를 내년 5200억 달러 수준까지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의 인재 공급 기반은 오히려 축소되는 분위기다.
특히 최상위 자연계 학생 상당수가 의대로 몰리며 이공계 고급 인력 풀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구조적 리스크로 거론된다. 일부 대학에서는 AI·공학 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의·치대 진학을 위해 중도 이탈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 “AI가 일자리를 없애지 않는다”…오히려 고숙련 중심의 임금 상승 견인
AI 확산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통적 우려와 달리, 생성형 AI가 가져온 변화는 예상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은 최근 세미나에서 “생성형 AI는 오히려 고숙련 인력의 가치와 생산성을 끌어올려 임금 상승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기존의 자동화 중심 AI가 단순·반복 업무를 축소했다면, 생성형 AI는 지식 기반 업무의 질을 높여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의 보상을 확대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역시 AI 도입이 업무 정확성·속도·편의성을 높였다고 평가하면서도,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질 사람은 고숙련 인재라며 실질적 수요는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 교육 전환 없이는 생산성 향상도 한계
문제는 공급이다. 한국 기업들은 AI 대응을 위해 기존 인력의 재교육을 서둘러야 하지만, 지금의 속도와 규모로는 산업별 노동 격차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고용·산업 전문가들은
· 기업 차원의 실무형 AI 교육 확대,
· 정부의 첨단 분야 인재 육성 전략 재정비,
· 이공계 고급 인재 유출 방지 정책
등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5년 내 본격적인 ‘AI 인력 공백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 한국 노동시장이 직면한 ‘두 개의 현실’
현재 한국 노동시장은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이 동시에 존재한다.
· 전통 산업은 구조적 축소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중
· 첨단 기술 산업은 성장 속도를 인력이 따라가지 못해 인재 격차가 커지는 중
산업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시점에서 인재 공급 체계를 개편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는 기술 기반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