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협상이 교착 상태를 넘어 벼랑 끝 전술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불(up front)’을 직접 언급하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증액’을 요구하면서 양국이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우려하며 무제한 통화스왑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전액 현금 투자와 투자 규모 확대를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이 이미 5,500억 달러 규모 펀드 투자에 서명하며 한국은 더욱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일본은 기축통화국 지위와 미국과의 통화스왑 체결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지만, 한국은 외환보유액과 제도적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특유의 ‘궁지몰기 협상술’로 해석된다. 그는 과거 부동산 사업 시절부터 상대를 압박해 최대 이익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유명했다. 문제는 현재 주요 국가 중 한국이 사실상 마지막 협상 대상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자동차 관세 문제로 빠르게 합의하면서 한국은 ‘진퇴양난’에 몰린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협상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부는 대미 투자 철회를 거론하며 ‘배수진’을 강조했고, 동시에 농산물 시장 개방 같은 새로운 협상 카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측에 ‘상업적 합리성’을 강조하며 일방적 수익 구조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미국이 요구하는 수익 배분 구조(원금 회수 전 5:5, 이후 9:1)는 한국으로선 수용 불가한 조건이다. 협상 라인 교체를 통한 시간 벌기와 협상 구도 재편 필요성이 국내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외환 안정성과 한미 동맹 신뢰도를 동시에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APEC 정상회의까지 불과 한 달여 남은 시점, 한국 정부가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지가 향후 통상 전략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