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에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외화 조달 안전판으로 한미 간 무제한 통화스왑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통화스왑 없이 달러 자금이 흘러나가면 원·달러 환율이 단숨에 2,000원대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왜 통화스왑인가
통화스왑은 국가 간 긴급 시 외화를 직접 교환하는 일종의 ‘달러 마이너스 통장’이다. 한국처럼 비(非)기축통화국이자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를 가진 국가는 외환시장의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스왑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원화가 하루 만에 12% 이상 급등하며 시장을 안정시킨 전례가 있다.
일본은 이미 미국과 상설·무제한 통화스왑을 맺고 있어, 무역 협상이나 대외투자 과정에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외환보유액 4,163억 달러(세계 10위 수준)를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이 요구한 투자금 3,500억 달러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 연간 1,000억 달러 가까운 환전 수요
씨티은행 분석에 따르면 한국이 2028년까지 약속한 투자를 모두 진행할 경우, 연간 최대 1,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이는 국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연 200억~300억 달러 조달 가능)에 비해 4~5배 이상 크다. 따라서 한미 통화스왑이 없다면 시장 불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 과거 사례가 주는 시사점
한국은 지금까지 두 차례 한미 통화스왑을 체결했다.
2008년 금융위기: 300억 달러 규모, 외환시장 안정에 즉각 효과
2020년 코로나19 위기: 600억 달러 규모, 글로벌 달러 경색 완화
두 번 모두 단기적이었지만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번 논의가 과거와 다른 점은 규모와 성격이다.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앞으로 수년간 이어질 대규모 투자와 환전 수요를 커버할 수 있는 ‘상설·무제한 통화스왑’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 전망과 과제
한국 정부는 이번 통화스왑 협상을 단순 금융안정 조치가 아닌 관세 협상 및 대미 투자 패키지 전략의 일환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통화스왑은 양국 간 신뢰와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협상이 성사된다면 한국은 투자 과정에서 달러 유동성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외환시장 안정성도 크게 강화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환율 급등, 외환보유액 소진, 투자 차질 등 복합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