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간 관세협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농산물 시장 개방 카드를 협상 지렛대로 꺼낼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오는 8월 1일로 예정된 양국 협상 시한을 앞두고 통상당국이 '주고받는 거래'를 예고하면서, 민감한 농업계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방미 일정을 마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농산물 협상은 언제나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 왔다”며 “지금도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는 실질적 합의점(Landing Zone)을 모색해야 할 단계"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관세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농산물 규제를 완화하거나 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사실상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이 관세 철폐를 요구하는 비관세장벽 중에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제한, 일부 과일과 가공육 수입 금지, GMO 승인 절차 개선 등이 포함돼 있다.
여 본부장은 “지켜야 할 민감한 부분은 유지하되, 소비자 후생이나 제도 선진화 측면에서 유연하게 볼 여지도 있다”며 "협상의 큰 틀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한국을 향해 관세협상에서 더 큰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 그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한국이 협상을 타결하길 원한다”고 공개 언급하며, 미국이 여전히 높은 관세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일본 사례를 들어 “그들도 태도를 빠르게 바꿨다”고 발언, 한국을 겨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협상 시한을 맞추기 위해 실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여 본부장은 “이달 내 타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하고 있다”며 “국내 이해관계자,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농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정부가 미국의 통상 압력에 굴복해 농업을 희생하려 한다고 비판했으며,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16일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설령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결정하더라도 대미 무역흑자 축소에는 제한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2025년 상반기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52억 달러로 2022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무역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놓고 벌어지는 한미 간 협상은 소비자 가격, 농업 경쟁력, 무역 수지, 한미 관계라는 복잡한 변수를 교차시킨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도 민감한 이슈를 조율하며 균형 잡힌 해법을 찾기 위해 치열한 협상을 이어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