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상법 개정으로 전례 없는 법적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 이사들의 책임 범위를 대폭 확장하면서, 기업 경영진은 향후 소송 리스크 관리에 전면적인 전략 수정을 요구받게 됐다.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형 로펌 주최 세미나에는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기업 법무·IR담당자들이 몰려들었다. 경영권 방어, 주주총회 운영, 이사회 의사결정 프로세스까지 모든 단계가 법적 분쟁의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 ‘주주 충실의무’ 확대…이사의 배임 리스크 부각
이번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회사에서 주주로까지 확대된 점이다. 기존에는 회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임이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주주가 입은 손해까지 이사 개인이 책임질 가능성이 커졌다.
법조계에선 상법 제401조의 해석 변화가 주목된다. 기존에는 회사가 손해를 본 경우에만 이사가 책임을 졌는데, 개정으로 주주가 직접 피해를 주장해 소송을 제기할 여지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상법의 원래 취지인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강화한 측면이 있지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매 결정이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배임 리스크’**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업현장, 이사회 운영부터 재설계
법무법인 세종이 개최한 상법 개정 세미나 현장에선 기업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상장 추진(IPO) 결정이 주주 반대에도 강행되면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경영상 판단의 정당성 입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경영상 필요했다”는 말이 아니라,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공문서, 법률 의견서, 이사회 의사록 등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은 이사회 프로세스 전반을 뜯어고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요식적 의사록만 남기는 게 아니라, 의사결정의 이유, 정보 검토 내용, 논의 과정 등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겨야 법적 분쟁에서 방어할 수 있다.
✔️ 감사위원 분리선출·‘3% 룰’ 확대…경영권 방어 과제
또 하나 주목할 변화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3% 룰’)이 사외이사 선임까지 확대된 점이다.
이는 대주주가 이사회 구성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막아 소수주주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 전략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주주총회에서는 ‘위임장 대결’(proxy fight) 대비가 필수가 됐다. 사전에 주주들의 위임을 확보하고, 정관을 재정비하며, 후보 자격 기준까지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특히 많은 기업이 내부 규정상 이사 자격 요건을 명확히 두지 않아, 주주 측이 특정 인사를 반복해 추천하는 리스크도 크다.
✔️ 전문가 조언: “이사회가 스스로 방어무기 만들어야”
법률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이 단순히 소송 리스크를 키운 게 아니라, 기업에게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숙제를 던졌다고 해석한다.
앞으로는 ▲충실의무 이행 증거 확보 ▲이사회 회의록 고도화 ▲법률 자문·공시 강화 ▲주주총회 전략 마련 등이 필수적이다.
특히 기업공개(IPO), 대규모 투자, 구조조정처럼 주주이익에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의사결정일수록, 경영진은 사전 법률 검토와 리스크 관리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한다.